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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05. Saturday

홍성담 - 촛불

홍성담의 그림창고 2008 ⓒ 홍성담

촛불 1.


촛불 2.


생각이 난 김에 지금은 없어진 humani.org 사이트를 http://web.archive.org/web/20040202050945/http://www.humani.org/ 에서 찾아 봤다. 다시 한번 읽고 싶었던 글은 고스란히 '유적화' 되어 있더라.


저항과 명상 ⓒ 홍성담

20세기는 불의 세기였다.
양차대전의 화염이 세기의 초입에서 허리까지를 가로 질렀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걸쳐
살육과 약탈, 일방의 승리와 일방의 패배로 점철되었다.
승리한 자의 손에는 패배로 고통받는 타민족의 경제적 재부가 가득했으며
고통받는 자들은 정신과 몸이 함께 황폐한 지경에 이르렀다.
19세기 중반 이후 이미 자본주의의 강력한 식욕과 번식력은 전 지구를 장악할
태세였고 어느 민족은 여전히 기형적 자본주의의 초기 상태를 맴돌고 있기도 하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유구한 시간 속 어느 시대 보다 치열한 대립을 겪었고
과학발전은 이 원시적 대립의 시간을 더욱 촉진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참으로 교묘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너무 단시간에 이루어졌고 거대한 현상들은
마치 서로를 처음 보는 듯한 관계인양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지난 100년간 경험한 일들은 앞선 시기 수백만년 동안 겪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전적 정보 축적을 요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우리들은
그 속도와 충격에 이제 무감해졌고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타자의 고통은 일상을 장식하는 하나의 소음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평균적 인식능력과 교육정도는 상대적으로 진보했고
이는 더 이상 직접적, 물리적 압제가 보편적인 통치 수단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포괄적인 민주주의 정신의 발전으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과 댓가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변방에 위치하고 서구적
시민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국가와 민족에게는 혹독한 것이었다.
1세계와 2세계의 주도권 다툼의 핵심은 정작 그들 나라의 재부의 쟁탈이 아니라
항상 3세계 민족의 운명에 관한 그들 즉, 1세계.2세계의 권리와 소유권을
가름하는 것이었고 지난 20세기 인류 역사의 폭력성과 기만성은
바로 이들 3세계 인민의 삶 속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구 열강의 총구와 아시아 패권주의의 야망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한반도에서 태어났다.
나의 민족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2차세계대전의 포성이 아련히 태평양 너머로 사라질 즈음
20세기 최대의 동족간 전쟁을 치루었다.
이것에 대해 서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대립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이라고 평가하건 단순히 KOREA 라는 나라의
시민전쟁으로 평가하건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판가름은 누가 역사 기록의 주체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것은 우리들 만의 결정으로 발생한 전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성은 멈추었지만 그 잔해는 즐비했던 1955년에 태어난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 빈곤과 비이성적 권력의 압제가
일상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저항' 이다. 인간의 행복은 오늘밤 내가 덥고 잠을 청할
이불의 부드러움만으로 판가름 할 수 없다. 물론 그것으로
행복지수를 측정하라는 유혹은 너무 강렬하다.
가장 원초적인 저항은 이성적 판단에 의한 저항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 그 길을 가라고 떠 미는 내 스스로의 내면에서
강제하는 '양심'의 권유에 의해서 시작된다.
그 권유 앞에서 한동안 망설이기도 했고,
내가 가진 용기와 결단력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저항의 길 위에 서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누가 그 길을 가라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길을 갔고
나의 예술은 이때 하나의 칼이 되었다.
예술을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것을 작동하고 활용하는
예술가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때에
스스로 행하는 자기검열의 가혹함이다.

어떤 예술가가 꽃밭을 마다하고 피의 언덕에서 헤메이기를 원하겠는가?
압제와 저항의 수위가 높아지고 어느 순간 그 정점에서 자행된 살육의 찰나,
나의 예술은 단 한명의 생명도 살리지 못했고 단 하나의 총알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때, 1980년 내가 살고 있었던 땅에서의 5월 어느날,
나는 내가 예술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저항은 자체로는 완전할 수 없었다.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가 테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듯이 저항은 압제에 맞서는 상대적 개념이었다.
결국 역사는, 인간은 회복을 전제로 싸우는 것이다.
저항의 역사 이면에 간절한 목마름으로 숨어 있던 치유에의 갈망을 발견한 순간
나는 다시 예술이라는 행위의 존재 이유를 각인했고 나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흔히들 싸움에 지쳐 꽃의 아름다움을 논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았던 꽃잎의 가녀린 떨림과 이슬 한방울에도 파동을 치는 그 순수함은
피 묻은 손으로, 피맺힌 눈으로 보기에 얼마나 화사한 것인가?
결국 모든 싸움과 모든 평화는 이 현상적 아름다움과 저항이라는 개념의
물리적 이미지가 시각적 '대비'를 이루면서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개념의 길로
치닫고 말기도 한다. 나의 작업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저항과 명상은 상대적이 아니라 음과 양 어느 하나 만으로
세상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굳이 부언하자면 나의 명상은 전투적 명상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연꽃이 진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피우기 위한 이기적 발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흙 속에 스스로의 생명의 근원이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연꽃이 스스로의 자태를 뽐낸 적은 없다. 인간이 그 꽃을 아름답다고 말 했을 뿐이다.
2002년 현재 인류는 저마다 그 꽃을 피우겠다 아우성치지만 발딛고 선
진흙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다. 서구적 합리주의 사상은 이론의 정합성과
이성적 세계관을 이야기하지만 그 바탕에 선 서구 자본과 권력의 모습은
점점 더 이성을 잃어 가고 있다. 어디 인류가 남긴 발자욱이
이성과 확신으로만 이루졌단 말인가?
더구나 무수한 발자욱 중 역사로 기록되어 남아 있는 것 만으로
남은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저항은, 그것에 소용되는 예술은
검증과 증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온 땅에서 합리를 이야기 하고
이성적 판단을 이야기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야만이다.
따라서 나의 명상은 내부로 침잠하는 고요한 그 무엇이 아닌
외부와 연대하고 내부를 각성시키는 저항의 기반과 같은 것이다.
나의 조형논리는 피카소와 마티스의 합리성에 있지 않다.
내가 그린 화면의 어느 귀퉁이에 사용한 붉은색은 조형논리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의해 살해 당한 내 누이들의 영혼이 토해낸 숨결이다.
죽은이들의 그 숨결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명상의 참 원리를 깨우쳐 주었고,
그 시신을 묻은 땅, 진흙 속에서 나는
그들의 꽃을 피워내는 직분을 다 할 뿐이다.

나의 21세기는 저항과 명상을 가로질러 온 20세기의 연장선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