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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7.31. Thursday

부탁

"은인자중하던 군부는 드디어 일제히 행동을 개시하여" 무더위와 장마에 고생하는 국민들에게 개그쇼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서 섭섭했나 보다. 니들도  "기아선상에 시달리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 한몫 할 수 있다는 것을 출판업계 깜짝 매출신장 이벤트를 통해 보여주고 있네. 원컨대, 국방부는 중단하지 말고 좀 더 체계적으로 정리해서 한 1000권 정도의 목록을 만들어 주면 좋겠다. 니들이 국민 커리큘럼을 만들어 줄거라고 생각은 못했는데 아뭏튼 고맙다. 벌써 몇권은 읽고 싶어 미치겠다. 앞으로 계속 쭉~ 부탁한다.
 

2008년 국방부  선정 불온서적 23選 at 알라딘
 

 
 
 
 




2008.07.29. Tuesday

2008.07.30 6번



전쟁 때의 기도
세계의 주인이시며 만왕의 왕이신 천주여, 몸소 우리를 징계하심으로 개과천선하게 하시고, 용서하심으로 보존하시오니, 우리에게 자비를 베푸시어, 우리로 하여금 조국의 평화와 시국의 안정을 다시 얻어 유익하게 이 책벌의 기회를 이용하게 하소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비나이다. 아멘. 가톨릭 기도서

투표권도 없는 처지에 저녁밥 짓기 전에 잠시 옮겼다. 전쟁 때의 기도 밖에 없네.


2008.07.28. Monday

잤다.



창문 열고 비 오는것 한참 구경해서 그런지 새벽에 머리가 조금 아파서 작년에 타다 놓은 사이클로벤자프린(Cyclobenzaprine) 한 알 먹고 잤다. 아침에 눈 뜨자마자 바로 이메일로 '나 오늘 좀 아프다. 좀 쉬고 오후에 갈께' 하고 한숨자고 깔끔하게 일어나니 시간은 오후 6시더라. 저녁 대충 먹고 한 시간 걷고 오니 새로 태어난 기분이다. 그나저나 내일 밀린 일 하려면 조금 빡시겠다.

2008.07.25. Friday

백두산

신문기사에서 확인한 대략적인 내용은 유현상, 김도균, 김창식, 이건태, 동두천 록 페스티벌을 계기로 그룹 백두산 재결성 ! 이다.

유현상을 뽕짝 가수나 수영선수 남편으로 알고 있거나 아님 전혀 모르는 사람들이 있겠지만, 백두산 2집에 실려 있는 The moon on the Baekdoo Mountain이나 Up in the sky 에서의 고음 사우팅을 들어본 사람이라면 유현상의 컴백 게다가 백두산의 보컬로서의 재림은 참으로 놀라운 기쁨이다. (그래도 Rock in Korea 같은 것 유현상이 부르겠다고 하면 안된다. 그건 임재범만 불러야 한다) 하여간 노장들의 컴백을 기쁜 마음으로 환영하는 바이다.

올드보이들의 귀환에 관한 좀 더 자세한 내용은 기사를 확인 하시기를 바라고, 기사에 실린 아지야의 말씀을 잠시 인용해 본다. (은행,동사무소,블루칩 대형주!)

"미국, 영국, 일본에서는 록 뮤지션이 그 사회에서 일정한 역할을 하는데 한국에서는 랩과 아이들그룹만 있는 비정상적인 구조였다고 할 수 있죠. 사회적으로 은행, 동사무소 등이 꼭 필요하듯 대중음악계에도 록 음악만큼은 존재해야죠. 최근 한국에서는 록 뮤지션이 거의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현실입니다. 블루칩 대형주가 뜨면 대세가 상승하듯 (백두산 재결성을 계기로) 한국에서 헤비메탈이 대세상승기를 탈 것입니다.(김도균)"

우여곡절 끝에 재결성하는 백두산이 좋은 음악을 연주해주기를 기대하면서도 걱정은 있다. 항상 그랬듯이 빼어난 연주 실력과 화려한 무대매너(쫄쫄이 스타킹?)에 걸맞지 않게 노래가사들은 다분히 건전가요 혹은 세련된 신파에 가까웠다. 아직 새로운 곡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 없지만 "우리가 대한민국이다(타이틀곡)는 어려움을 딛고 열심히 노력해서 국민들이 잘살고 모두 신나는 나라를 만들자"라는 내용이라고 하니 백두산 1집의 웅비 속편이 되지 않을까 살짝 걱정이 앞선다.

원컨대, 나의 걱정이 기우가 되기를.


2008.07.24. Thursday

싼티나

풍경을 동시에 잡아내고 싶었지만 다리는 쉽게 더 올라가지 않았다.

선탠이 필요하십니까?
그럼 땡볕에 걸어보십시오.

싼티나 구리빛 다리를 만드는 이 여름에  나는 나의 생활을 향락하고 있습니다.

모두 다 그러하길



2008.07.23. Wednesday

쉽다


중요한 것

아는 것이 최상은 아니다. 인간의 지혜에는 한계가 있다. 위로는 아무개 씨부터, 아래로는 아무개 씨에 이르기까지 모두 거기서 거기다. 중요한 것은 힘일 것이다. 미켈란젤로는 그런 일을 안 해도 되는 유복한 몸이었지만, 남의 손을 빌리지 않고 뭐든지 혼자 했다. 대리석 덩어리를 산에서 마을의 작업장까지 끌어 옮기고, 그렇게 해서 몸을 엉망으로 만들어 버렸다. 덧붙인다. 미켈란젤로가 사람을 싫어했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를 그토록 싫어했다고 한다. (다자이 오사무, 나의 소소한 일상, 174)

사람 만나면 피곤한것은
나이 들며 생긴 병인데,
오늘도 과히 기분이 좋지 않다.
세련된 독고다이 정신은
상대방 기분 상하게 않고
눈치껏 가려가면서 사귀어야 하는 것이겠다. 

..라고 쓰고 보니 책에는 이런 이야기도 있네

"사람은 평생 같은 수준의 작품밖에 못 쓴다" (다자이 오사무, 같은 책, 162)

고로, 고수를 만나려면 고수가 되는 수 밖에.

2008.07.21. Monday

덥다




다시 녹색이 대세다.
일요일, 장을 보고 동네 수목원에 잠시 들러서 짧게 걸었다.
매년 7월에 운동화를 사서 떨어질 때 까지 버틴다.
올해는 아디다스 다.
새 운동화 버릴까봐 오늘은 버스 타고 퇴근했다.

날이 덥다.


2008.07.18. Friday

걷기

Path1: 5.8Km
Path2: 3.5Km
Path3: 2.1Km
Path4: 4.0Km

한달이 되어 간다.
퇴근 시간에
월요일은  최소 Path1 + Path3  에서 최대: Path1 + Path2 + Path 4 에서
화요일은 대부분 Path 1+Path2+Path4
수요일은 Path2*왕복에 Path 3  를
걷고 있다.

주말에는
하루만 걷는다.



2008.07.11. Friday

참고: 헬렌켈러


ⓒ 김교신, 생명의 계단

6. 헬렌켈러

7월 13일 경성(京城) 부민관(府民館)에서 열린 헬렌 켈러 강연회에 참석하였다. 강연회라고 하나 사상의 발표라기보다 생후 19개월만에 맹·농·아(盲·聾·啞)의 3난(三難)에 일시에 걸린 인간이 어떻게 하여 보고, 듣고, 말하게 되었는가 하는 것을 설명 실연(實演)하는 일이었다. 맹아교육(盲啞敎育)의 실제를 보고 또한 헬렌 켈러 전집(全集)에 의하여 그 생애의 고심(苦心)의 정도를 대강 살핀 자에게는 별로 신기한 감을 주기보다 도리어 범상(凡常)한 일, 당연한 일 같은 느낌도 없지 않았다.

그 체격의 건실함, 표정의 명랑, 거조(擧措)의 경쾌(輕快), 혜지(慧智)의 광휘 등은 보는 자를 놀라게 하였다. 3중의 불구자로서 58년간 고투한 사람이라는 어둠에 묻힌 비애와 절망의 흔적은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능란한 지화(指話)와 완전에 가까운 발음, 비상히 발달한 촉각 등은 도리어 여사(女史)의 각고면려(刻苦勉勵)의 덕(德)과 교사 설리번 선생의 노심(勞心)의 공(功)을 무시케 하는 바 있으나 돌이켜 생각할수록 맹, 농, 아의 망주석(望柱石) 같은 헬렌 켈러도 저렇게 교육하며 수양할 수 있다 할진대 우리가 오늘까지 맡아 지도하던 학생에게 대한 단려 속단(短廬速斷)과 우리 자녀에게 대한 성의 없는 헛된 욕심과 우리 자신에 대한 초급한 비관을 모두 참회하지 아니치 못하다. 형제를 미련한 자라고 단언하는 자에게 중벌이 있으리라고 하신 주님의 말씀이 강하게 나를 심판하다. 오관이 구비한 인간을 둔해서 교육할 수 없다고 하는 교사와 오관이 구비하면서 소질(素質)을 운위하고 자포자기하는 자에게는 천벌이 내릴 것만 같다.

헬렌 켈러의 이번 세계 여행은 50년간 저를 교도하여 주고 작년에 별세한 은사 설리번 선생의 조합전(弔合戰)으로 출발한 것이라고 선생께 대하여 하늘에 닿을 은혜를 최대한도로 갚을 길은 오직 전세계의 불구자들의 행복 증진을 위하여 노력하는 일인 줄로 알고 떠났다고. 그러므로 그녀[피녀:彼女]의 호소함에는 편언단구(片言單句)에도 항거할 수 없는 힘이 들어찼다. 「나의 유일한 소원은 세계 평화와 동포애」라 하며 「하나님이 나의 앞뒤에 계시니 내 두려울 것이 없고 또한 모든 일이 성의(聖意)대로 되어갑니다.」라고 신앙을 고백하는 그녀는 「나를 불구자로 가엾이 보는 이들이 많으나 실상 가엾은 것은 내가 아니요, 눈 뜨고도 바른 대로 볼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하여 자신은 감사에 넘쳤다. 눈뜬 구건자(具健者)들을 향하여 「여러분의 눈에 광명을 주시고 여러분의 귀에 아름다운 소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데는 어둠과 무언(無言)의 길을 더듬고 있는 그들을 돕는 것이 더없는 고귀한 길입니다.」라고 설교한다.

그리스도의 생명에 사는 자에게는 모든 것이 그 영광을 위하여 불가결인 듯하다. 농아(聾啞)만 해도 불구요, 맹(盲)만 되어도 한탄할 터인데 그녀에게는 3중의 불구된 것이 더욱 영광의 재료인 듯하며 연약한 여성으로 태어났던 것도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기에 무방할 뿐더러오히려 필요했던 것같이 보인다. 그리스도를 중심으로 볼 때에 만사가 다 가(可)하다, 아멘이다, 할렐루야다.

* 헬렌켈러가 1937년 7월 식민지 조선을 방문했을 때, 김교신은 서울시민회관에서 헬렌켈러의 강연을 들었다.
* 김교신에 관한 더 많은 정보는 성서조선, 김교신, 무교회주의에서 볼 수 있습니다. 


못듣고 못보고 말못하는 그가 발견한 좋은세상, 세계의 사회주의자 ② - 헬렌 켈러 ⓒ 레디앙

교과서도, ‘세계위인전기’도 철저히 외면했다. 그녀의 신체적 장애만 부각시켰을 뿐 정작 장애를 극복한 그녀가 지키고 설파하고자 했던 이념은 깨끗이 지워버렸다. 미국에서조차 시각, 청각 장애를 이겨낸 여인으로만 알려져 있는 헬렌 켈러(1880∼1968). 그녀의 삶은 세상을 떠난 지 30년이 지난 1998년 전기 작가 도로시 허먼의 <헬렌 켈러-A Life>(미다스북스, 2001)가 출간되면서 다시 조명을 받기 시작했다. 정열적인 사회주의자로서 헬렌 켈러가 되살아난 것이다. (하략)

헬렌켈러 - 군국주의의 협박을 물리칠 전 세계적 반란, ⓒ 장석준, 육성으로 듣는 열정의 20세기

....지배자들이 여러분들의 땀의 결실을 따먹을 때, 여러분은 뼈 빠지게 일하지 않고서는 비참한 삶조차 연명할 수 없다면, 이 위대한 공화국(미국)이란 고작 자유의 모사품일 뿐 입니다. 도대체 무엇을 위해 싸워야 한다는 말일니까? 조국의 독립? 이건 지배자 자신들만의 독립을 의미할 뿐입니다. 그럼, 여러분이 더 나은 생활조건을 요구할 때 여러분을 감옥에 처넣는 그 법을 위해? 아니면 국기? 그 깃발이 여러분이 충분히 자유를 누리며 가정을 꾸리는 그런 나라의 깃발 입니까? 혹시 그 깃발이 여러분이 임금 상승과 노동시간 단축을 위해 파업투쟁을 할 때 주먹질을 퍼붓는 그런 나라의 상징은 아닙니까? 여러분은 살인 명령을 받았을 때조차 복종해야 한다고 가르치는 지배자들의 종교를 위해 싸우고 싶은 겁니까?

자, 이제 인간을 야수로, 신을 괴물로 전락하게 하는 지배자들의 종교, 저들의 문명, 저들의 왕과 관습을 쓰레기로 만듭시다. 자유를 위한 나팔 소리가 울리게 합시다. 노동자들이 하나의 거대한 전 세계적 노동조합 아래 뭉칠 수 있도록 그것을 건설합시다. 노동자들이 참된 자유와 행복을 쟁취할 수 있도록 이제 전 세계적인 반란을 시작합시다.

* 번역의 원본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나, 전체적인 내용이 크게 다르지 않은 헬렌켈러의 연설문은 Strike against War 또는 Helen Keller Reference Archive 에서 볼 수 있습니다. 


2008.07.10. Thursday

쥐들에게

http://www.iam1969.net/data/yok.swf
자장가로 들려주고 싶다.

2008.07.06. Sunday

FTA 10문 10답 外

읽어보기 위해서 모으고 있는 중 입니다.

1. 노동자가 알아야 할 한미FTA10문10답 서울노동광장
PDF 파일 다운로드

2. 국민들이 모르고 있는 무서운 FTA 독소 조항 12가지
http://blog.daum.net/jhsct2/15190903

3. "IMF 사태 이후 '더' 행복하니?...그럼, 찬성해라!"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article.asp?article_num=30070629161719

4. 이민 가거나, 안 되면 시골 가셔야... [정태인의 경제정책 검증②] 이명박 747 종착지는 대재앙
http://www.redian.org/news/articleView.html?idxno=7989

5. 한미 FTA 뜯어보기 - 프레시안 집중이슈
http://www.pressian.com/scripts/section/menu/search_thema.asp?article_num=168

6. 송기호, 한미 FTA의 마지노 선: 악마는 각론에 숨어 있다. 추천.

7. F-키라 네이버 카페


2008.07.05. Saturday

홍성담 - 촛불

홍성담의 그림창고 2008 ⓒ 홍성담

촛불 1.


촛불 2.


생각이 난 김에 지금은 없어진 humani.org 사이트를 http://web.archive.org/web/20040202050945/http://www.humani.org/ 에서 찾아 봤다. 다시 한번 읽고 싶었던 글은 고스란히 '유적화' 되어 있더라.


저항과 명상 ⓒ 홍성담

20세기는 불의 세기였다.
양차대전의 화염이 세기의 초입에서 허리까지를 가로 질렀다.
아시아, 유럽, 아메리카, 아프리카 대륙을 걸쳐
살육과 약탈, 일방의 승리와 일방의 패배로 점철되었다.
승리한 자의 손에는 패배로 고통받는 타민족의 경제적 재부가 가득했으며
고통받는 자들은 정신과 몸이 함께 황폐한 지경에 이르렀다.
19세기 중반 이후 이미 자본주의의 강력한 식욕과 번식력은 전 지구를 장악할
태세였고 어느 민족은 여전히 기형적 자본주의의 초기 상태를 맴돌고 있기도 하다.
이데올로기는 인간의 유구한 시간 속 어느 시대 보다 치열한 대립을 겪었고
과학발전은 이 원시적 대립의 시간을 더욱 촉진하거나 지원하는 역할을 수행했다.
참으로 교묘한 것은 이 모든 것이 너무 단시간에 이루어졌고 거대한 현상들은
마치 서로를 처음 보는 듯한 관계인양 위장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인류가 지난 100년간 경험한 일들은 앞선 시기 수백만년 동안 겪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는 유전적 정보 축적을 요하는 것이었지만 정작 우리들은
그 속도와 충격에 이제 무감해졌고 미디어를 통해서 전달되어지는
타자의 고통은 일상을 장식하는 하나의 소음에 불과한 것이 되어 버렸다.
그러나 모든 것이 부정적인 것은 아니다.
인간의 평균적 인식능력과 교육정도는 상대적으로 진보했고
이는 더 이상 직접적, 물리적 압제가 보편적인 통치 수단이
될 수 없는 세상이 되었다는 신호이기도 하다. 이에 대해
포괄적인 민주주의 정신의 발전으로 받아들여도 무리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과정과 댓가는 기독교적 세계관의 변방에 위치하고 서구적
시민민주주의와 자본주의를 기반으로 하지 않은 국가와 민족에게는 혹독한 것이었다.
1세계와 2세계의 주도권 다툼의 핵심은 정작 그들 나라의 재부의 쟁탈이 아니라
항상 3세계 민족의 운명에 관한 그들 즉, 1세계.2세계의 권리와 소유권을
가름하는 것이었고 지난 20세기 인류 역사의 폭력성과 기만성은
바로 이들 3세계 인민의 삶 속에서 그 전형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나는 서구 열강의 총구와 아시아 패권주의의 야망이
교집합을 이루고 있는 한반도에서 태어났다.
나의 민족은 이데올로기 대립이라는 미명하에
여전히 휴전선을 사이에 두고 서로 총구를 겨누고 있다.
2차세계대전의 포성이 아련히 태평양 너머로 사라질 즈음
20세기 최대의 동족간 전쟁을 치루었다.
이것에 대해 서구 자본주의와 사회주의 진영간의 대립이 만들어낸
이데올로기의 대리전이라고 평가하건 단순히 KOREA 라는 나라의
시민전쟁으로 평가하건 그 자체는 중요하지 않다.
어차피 그 판가름은 누가 역사 기록의 주체인가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명백한 것은 우리들 만의 결정으로 발생한 전쟁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포성은 멈추었지만 그 잔해는 즐비했던 1955년에 태어난 나의 눈에 비친
세상은 결코 희망적이지 않았다. 빈곤과 비이성적 권력의 압제가
일상화 되어 있는 나라에서 희망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단 하나 뿐이었다.
그것은 바로 '저항' 이다. 인간의 행복은 오늘밤 내가 덥고 잠을 청할
이불의 부드러움만으로 판가름 할 수 없다. 물론 그것으로
행복지수를 측정하라는 유혹은 너무 강렬하다.
가장 원초적인 저항은 이성적 판단에 의한 저항이 아니라
인간의 본능이 그 길을 가라고 떠 미는 내 스스로의 내면에서
강제하는 '양심'의 권유에 의해서 시작된다.
그 권유 앞에서 한동안 망설이기도 했고,
내가 가진 용기와 결단력은 항상 부족했다.
하지만 나는 어느새 저항의 길 위에 서 있었고
많은 이들이 함께 하고 있었다.
누가 그 길을 가라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 길을 갔고
나의 예술은 이때 하나의 칼이 되었다.
예술을 저항의 수단으로 사용하고
싸움의 도구로 이용하는 세상은 그 자체로 지옥이다.
더욱 불행한 것은 그것을 작동하고 활용하는
예술가 스스로가 그 사실을 알고 있을 때에
스스로 행하는 자기검열의 가혹함이다.

어떤 예술가가 꽃밭을 마다하고 피의 언덕에서 헤메이기를 원하겠는가?
압제와 저항의 수위가 높아지고 어느 순간 그 정점에서 자행된 살육의 찰나,
나의 예술은 단 한명의 생명도 살리지 못했고 단 하나의 총알도 막아내지 못했다.
그때, 1980년 내가 살고 있었던 땅에서의 5월 어느날,
나는 내가 예술가라는 사실을 부인하고 싶었다.
저항은 자체로는 완전할 수 없었다.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가 테제를 전제로
할 수밖에 없는 한계를 가지고 있듯이 저항은 압제에 맞서는 상대적 개념이었다.
결국 역사는, 인간은 회복을 전제로 싸우는 것이다.
저항의 역사 이면에 간절한 목마름으로 숨어 있던 치유에의 갈망을 발견한 순간
나는 다시 예술이라는 행위의 존재 이유를 각인했고 나의 자리를 되찾을 수 있었다.
흔히들 싸움에 지쳐 꽃의 아름다움을 논하기도 한다.
보이지 않았던 꽃잎의 가녀린 떨림과 이슬 한방울에도 파동을 치는 그 순수함은
피 묻은 손으로, 피맺힌 눈으로 보기에 얼마나 화사한 것인가?
결국 모든 싸움과 모든 평화는 이 현상적 아름다움과 저항이라는 개념의
물리적 이미지가 시각적 '대비'를 이루면서 공존할 수 없는 '대립'적 개념의 길로
치닫고 말기도 한다. 나의 작업에서 가장 경계하는 것은 바로 이 지점이다.
저항과 명상은 상대적이 아니라 음과 양 어느 하나 만으로
세상이 성립할 수 없는 것과 같은 개념이다.
굳이 부언하자면 나의 명상은 전투적 명상이다.

연꽃은 진흙 속에서 핀다.
연꽃이 진흙을 마다하지 않는 것은 스스로를 피우기 위한 이기적 발단에
의해서가 아니라 진흙 속에 스스로의 생명의 근원이 있음을 감지하기 때문이다.
연꽃이 스스로의 자태를 뽐낸 적은 없다. 인간이 그 꽃을 아름답다고 말 했을 뿐이다.
2002년 현재 인류는 저마다 그 꽃을 피우겠다 아우성치지만 발딛고 선
진흙의 소중함을 간과하고 있다. 서구적 합리주의 사상은 이론의 정합성과
이성적 세계관을 이야기하지만 그 바탕에 선 서구 자본과 권력의 모습은
점점 더 이성을 잃어 가고 있다. 어디 인류가 남긴 발자욱이
이성과 확신으로만 이루졌단 말인가?
더구나 무수한 발자욱 중 역사로 기록되어 남아 있는 것 만으로
남은 시간을 예측할 수 있겠는가. 저항은, 그것에 소용되는 예술은
검증과 증거를 전제로 하지 않는다. 내가 살아 온 땅에서 합리를 이야기 하고
이성적 판단을 이야기 하는 것은 또 하나의 야만이다.
따라서 나의 명상은 내부로 침잠하는 고요한 그 무엇이 아닌
외부와 연대하고 내부를 각성시키는 저항의 기반과 같은 것이다.
나의 조형논리는 피카소와 마티스의 합리성에 있지 않다.
내가 그린 화면의 어느 귀퉁이에 사용한 붉은색은 조형논리가 지시한 것이
아니라 부당한 권력에 의해 살해 당한 내 누이들의 영혼이 토해낸 숨결이다.
죽은이들의 그 숨결은 살아 있는 자들에게
명상의 참 원리를 깨우쳐 주었고,
그 시신을 묻은 땅, 진흙 속에서 나는
그들의 꽃을 피워내는 직분을 다 할 뿐이다.

나의 21세기는 저항과 명상을 가로질러 온 20세기의 연장선일 뿐이다.


 


2008.07.05. Saturday

신부님. 스님 말씀

신부님

거짓 예언자들을 조심하여라.

그들은 양의 탈을 쓰고 너희에게 나타나지마는 속에는 사나운 이리가 들어 있다.
너희는 행위를 보고 그들을 알게 될 것이다.
가시나무에서 어떻게 포도를 딸 수 있으며 엉겅퀴에서 어떻게 무화과를 딸 수 있겠느냐?"
(마태복음 7장 15절)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참상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국민을 상대로 마구 저지르는 오늘의 폭력상과 거짓들을 지켜보며 우리는 분노합니다.
주권재민을 힘껏 외치는 시민들의 고뇌를 마음에 품고 오로지 기도에 집중하기 위해
사제들이 오늘까지 이렇다 할 의견표명과 행동 없이 침묵 중에 지냈으나
이제 그런 절제도 아무런 의미가 없게 되었습니다.

국민이 그토록 간절하게 호소하건만 정부가 미국의 압박에 자진 굴복하여
문제의 쇠고기와 위험한 부속물 수입을 전면 허용해버렸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들끓는 국민여론을 제압하기 위해 몽둥이와 방패로 시민들을 패고
내려찍으며 무참히 폭력을 행사했습니다.
이로써 촛불에 담겼던 간곡한 뜻은 짓밟혔고
우리는 대통령과 정부의 존립근거에 대하여 묻지 않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은 이명박 대통령과 정부 각료들 그리고
한나라당의 교만과 무지를 탄식하면서 그들의 병든 양심을
교회의 이름으로 엄중하게 꾸짖고자 합니다.
아울러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선포해야 하는 사제의 양심에 따라
오늘 대한민국의 민주주의가 심각한 위기를 맞고 있다는 점을 경고합니다.

먼저 보수언론의 폐해를 지적합니다. 참여정부 시절 광우병의 위험성을
무섭게 따지고 들다가 현 정부가 출범하자마자
미국산 쇠고기의 절대 안전을 강변하는
조선·중앙·동아일보의 표변과 후안무치는 가히 경악할 일입니다.
정론직필의 본분의 버리고 이해득실에 따라 말을 뒤집는 언론의 실상이 널리 알려진 것은
만시지탄이나마 다행이 아닐 수 없습니다.

대통령이 국가정책의 많은 부분에 대하여 국민을 속이고 있는 현실은 더욱 큰 불행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이 순진하다고 착각하는지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대다수 국민은 그의 궤적을 잘 알면서도 혹시 경제문제 해결에 도움이 될까 싶어
지난 대선의 결과를 빚어낸 것뿐입니다. 대통령은 국민의 기대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습니다.
금번 쇠고기 협상에서 드러난 정부의 무능도 울분을 터뜨릴 일이지만,
높이 받들고 깊이 새겨야 할 천심을 폭력으로 억누르는 정부의 교만한 태도는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일입니다.

그저 미국에 충성하려 드는 맹목적 사대주의도 딱한 일이거니와
오늘 우리 사회에 불어닥친 재앙은 무엇보다도 돈을 위해 정신의 가치를 값싸게 여기는
정부의 경박한 물신숭배에서 비롯했음을 지적합니다.
국민이 바라는 것은 값싸고 질 좋은 외국산 쇠고기가 아니라 모두가 공생공락하는 드높은 자존감입니다.

국제적 망신을 일으킨 졸속협상이나마 정부의 주장대로
이에 복종하는 것이 한미FTA 체결 조건에 유리하고,
그래서 자유무역이 혹시 경제지수를 끌어올릴 것이라는 억측이 설령 옳다고 가정해도
그 결과는 이미 굳어질 대로 굳어진 양극화 현상을 더욱 극단으로 몰고 갈 것이라는 게 교회의 판단입니다.
결국 정부는 불행한 미래를 강요하는 수단으로 공권력을 악용하여
국민의 통곡과 신음을 억지로 틀어막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어둠이 빛을 이겨 본 적이 없다"(요한복음 1장 5절)는 성경 말씀을 묵상하면서
오늘까지 촛불을 지켰던 민심을 지지하고 격려합니다.
우리 사제들은 청정한 수도자들과 전국의 모든 교우들과 함께 무장경찰들의 폭력에
숭고한 촛불의 뜻이 꺼지지 않도록 지켜 드리고자 합니다.
정부는 원천봉쇄와 강경진압
그리고 오늘 아침에 벌어진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압수수색과 체포 따위로
진실을 어둠에 가두려고 하겠지만 이런 모진 마음 때문에
국민이 받은 상처와 모욕은 더욱 깊어만 갈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대통령에게 호소합니다.

1. 국민은 너그럽습니다. 대통령은 우선 쇠고기 협상의 실패를 인정하고,
국민 앞에 겸손하게 사죄를 청하는 뜻으로 장관 고시를 폐하고 쇠고기 전면 재협상을 선언하길 바랍니다.

2. 먼저 들으셔야합니다. 소통을 강조하는 대통령은 먼저 국민의 소리를 들으시고
그 진실을 깊이 헤아린 다음 국민과의 대화에 나서길 바랍니다.

3. 국민은 현명합니다. 문제의 핵심은 국민 건강의 안전성과 이를 보증할 검역주권입니다.
일부 언론이 쇠고기 문제를 친미와 반미, 진보와 보수의 이념갈등으로 몰아감으로써 핵심을 왜곡하지 말아야 합니다.

4. 과잉 폭력진압을 지시한 어청수 경찰청장을 해임하고
시위 중 연행된 사람들과 대책회의 구속자들을 전원 석방하십시오.
그리하여 존엄을 바라는 국민의 상처를 씻어주길 바랍니다.

5. 국민 여러분에게도 호소합니다. 촛불은 평화의 상징이며 기도의 무기이며 비폭력의 꽃입니다.
우리가 비폭력의 정신에 철저해야만 폭력의 악순환을 끊어버릴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모든 신앙인에게 호소합니다. 촛불은 안으로는 내면의 욕심을 불태우고,
밖으로는 어둠을 밝히는 평화의 수단입니다. 저마다 마음을 비우고 맑게 하여
지친 세상을 위로하고 서로에게 빛이 됩시다.

2008년 6월 30일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


스님

현 시국을 두 눈으로 봅시다 .

우리는 80년대의 험한 산을 힘겹게 넘어 왔습니다. 그리고 가까이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를 거치면서 이제 더 이상 넘을 산은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이명박 정부가 들어서고 나서 돌연히 또 하나의 높은 산이 나타나 국민의 앞을 가로 막고 있습니다.

실로 경악을 금할 수 없습니다. 이로 인해 지금 우리 사회는 무슨 큰 일이 터질 것 같은 불안감에 휩싸여 있습니다. 이른바 쇠고기 협상을 다시 하라고 요구하는 국민과 그 요구를 수용할 수 없다고 버티는 정부와의 강경 대결이 이런 예측 불허의 긴장된 상황을 만들고 있습니다.

기차와 기차가 맞보고 달리면 그 결과는 공멸뿐입니다. 더군다나 이런 대결 상황을 이기고 지는 문제로 접근하면 해결 방법은 없습니다. 어느 쪽이건 진다는 것은 명예의식이 용납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쇠고기 문제는 잘잘못으로 성찰해야 합니다.

물론 그 성찰에는 인간의 불완전함이 전제되어야 합니다. 인간은 불완전하기 때문에 누구나 실수도 할 수 있고 잘못도 저지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위대합니다. 바로 그 잘못을 인정할 줄 아는 아량과 겸허함과 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인간다운 아름다운 모습입니다.

이런 면에서 볼 때 이명박 대통령에게는 잘못이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대통령으로서 한 눈을 감았거나 아니면 대통령이라는 콩깍지가 씌어서 한 쪽 눈의 시력을 잃었습니다. 그로인해 한 가지만 보거나 한 쪽만 보는 잘못이 있습니다.

예컨대 쇠고기는 보면서 광우병을 보지 못하고 미국의 부시 대통령은 보면서 한국의 국민들은 보지 못합니다. 어디 그 뿐입니까? 촛불시위의 허물은 보지만 대통령의 잘못은 보지 못하고 추가 협상까지는 보지만 재협상은 보지 못하고 뼈아픈 반성까지는 보지만 고쳐야 할 것은 보지 못합니다.

이런 눈 때문에 중고등 학생들도 아는 생명의 가치를 대통령은 모르고 있습니다. 이것은 쇠고기 협상에서 볼 수 있습니다. 곧 30개월 이상의 쇠고기와 광우병 위험물질까지를 그것도 아주 쉽게 수입하기로 결정한 대통령의 태도에는 경제를 살리기 위해서는 광우병쯤은 감수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습니다.

그러나 중고등 학생이나 국민들은 경제만 살아난다면 광우병에 걸려도 좋다는 것을 받아들일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이명박 대통령의 747공약대로 한국 경제가 연간 7%씩 성장하고, 국민소득이 4만 불이 되고, 그리고 세계 7대 선진국에 진입한다고 한들 광우병에 걸려서 죽는다고 하면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냐는 것입니다.

결국 경제라는 것은 사람이 폼 나게 살아가는 데에 필요한 조건으로서 요구되는 것이지 죽은 다음에야 황금산을 가진들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인간의 생명 위에 존재할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명박 대통령은 계속해서 한국 경제를 위해서는 재협상을 할 수 없다고 뭉개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공권력의 폭력을 합법화해서 촛불시위를 제압하려는 의도를 굳히고 있습니다. 최근의 공권력이 자행한 무자비한 폭력을 보면 이명박 대통력이 과연 민선 대통령이 맞는가 하는 의구심마저 듭니다. 왜냐면 쿠데타로 집권한 대통령이나 쓸 법한 후진국 수준의 낡은 방법을 구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에 좌시할 수 없어 종교계의 성직자들까지 거리에 서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이 나라에 어떤 상징성을 갖고 있는가. 이명박 정부는 그에 대한 깊은 성찰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진지한 성찰을 통해서 이제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대통령으로서 잘못을 깨달아야 합니다.

캄캄한 방에 촛불을 밝히면 일시에 어둠이 사라지듯, 잘못을 깨달으면 그 잘못의 허물도 금방 일소됩니다. 양쪽을 다 보지 못하고 한 쪽만 본 것 때문에 쇠고기 협상에 있어서 대통령으로서 막을 것을 막지 못하고 지킬 것을 지키지 못한 점, 그러면서 반대급부도 없이 오히려 주기만 하고 물러서기만 했다는 점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시력은 정상적으로 회복될 것입니다. 따라서 두 눈으로 보면 미처 보지 못했던 것도 보게 될 것이고 그렇게 되면 재협상의 당위성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하여 국민의 뜻을 좇아 재협상을 선언하고 그로인해 부정적으로 보였던 모든 고정관념이 해소되어 다시금 국민들로부터 지지를 받는 대통령으로 다시 태어나기를 바랍니다.


한 눈으로 보면

촛불만 보이지만

두 눈으로 보면

촛불 속의 영혼까지 보입니다.


씽씽 바람이 되는 이여

알아야 합니다

영혼이 있는 촛불은

폭풍도 끄지 못한다는 것을.


이 촛불 앞에서

두 눈으로 보면

안 보이던 종달새의

노래 소리도 다 보이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한 눈을 감고


두 뿔로 들이 받는 쇠귀신은 보지 못하면서

안 보이는 금송아지 꼬리만 보인다 합니까.


2008년 7월 4일
청화스님 시국법어 전문


2008.07.04. Friday

최호철 - 2008년 촛불 대행진

창비주간논평  [만화] 2008 촛불대행진 2008.6.24 ⓒ 최호철




아래, 순서에 따라 94년 노동자대회날, 을지로 순환선, 와우산

오늘 책(최호철 이야기 그림 - 을지로 순환선, 거북이 북스. 2008년)을 받아서 살펴보니
아래 그림은 을지로 순환선 책에 모두 있군요. 좀 더 자세히 살펴보면 재미 있을 것 같아서
좌우로 나눠서 큰 사이즈로 스캔해서 올렸습니다. (아래, 크게 보기)





을지로 순환선 좌측 크게 보기 우측 크게 보기

와우산 1994

와우산 좌측 크게 보기 우측 크게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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