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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03.05. Wednesday

옛날 이야기 한 토막

......바이올린 때문에 뜻밖에 한 여성을 알게 되었다. 나는 연애라는 것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고 살았기에 주변 여성들을 많이 알긴 했어도 특별한 일이 생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젊은 날의 풍경 정도였다.

대학의 여름 방학, 귀향하는 경부선 열차 안에 같은 방향으로 가는 학생들 한 패거리가 타고 있었다. 아예 한 칸을 타지하고 있던 동무들이 갑갑하니 내게 바이올린을 연주해보라고 했다. 아마 <유모레스크>나 무슨 명곡 같은 걸 켰을 것이다. 그때 내 바이올린에 맞춰 한 여성이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바이올린 병창이 된 것이다. 그 때문에 쉽게 얘기를 나누게 되었다. 스물한둘이던 김은희라는 여성은 마산에 있는 학교의 음악선생인데 집이 평양이라고 했다. 혹시라도 특별한 호의를 받게 될까 염려되어 나는 결혼한 사람으로 아내가 기다린다는 말을 했다. 얼마 후 우리집으로 간단한 안부를 묻는 엽서가 한 장 날아왔다.

아버지는 그 편지를 전해주며 "여자들한테 너무 친절하게 하지 말라"고 경계했다. 그 후에도 몇 번 편지가 왔는데 얇은 비단 손수건이나 말린 꽃이 들어 있기도 하고 악보를 구해달란 부탁이 오기도 했다. 나는 엽서에 간단히 답하고 부탁한 악보도 보냈다. 특별한 정을 나누는 것도 아니었으므로 아내도 무어라 하지 않았다.

어느 날 그녀에게서 결혼한다는 소식이 오고 편지도 더 오가지 않게 되었다. 그 후 10여 년이 지니 보성전문 학생들을 데리고 만주로 여행을 떠나게 되었는데 기차가 평양을 지나쳐갔다. 그때는 별의별 일이 다 신문에 나던 때라 평양의 김은희가 이 기사를 보았던 모양이다. 기차가 어느 역에 정차하자 김은희가 학생수 대로 먹을 거리를 한 보따리 해서 들리우고 인사를 하러 온 것이다. 학생들은 뜻하지 선물에 좋아서 난리였다. 그녀는 그저 선의의 여성인 것 같았다. 그러나 돌아오는 날에는 역에 나올 것 없다고 말했다. 그녀의 집은 평양역 부근의 2층 양옥인데 창문에서 기차를 향해 손만 흔들어 작별하기로 했다. 나도 그집에 잠시 눈을 주었다.

몇 년 후 다시 서울대학병원에서 김은희의 가족들로부터 내게 연락이 왔다. 그녀가 무슨 수술을 받게 되었는데 수술실에 들어가기 전 내가 꼭 한 번 면회를 와주었으면 한다는 것이었다. 그녀의 부모와 남편을 비롯한 가족이 모여 있는 병실에 갔다. 그때 수술을 한다는 것은 죽음을 거의 각오하는 것이어서 마지막 인사를 미리 해두는 자리 같은 것이었다. 그녀가 나를 어떻게 말했는지 가족들은 나를 깍듯이 대했다. 수술은 잘 끝났다. 그 부친은 그때 내게 미국 유학을 권했다. 모든 비용을 자기네가 대겠다는 것이었다. 당연히 거절했다. 그때까지도 나는 그녀의 집안이나 가족 상황 들에 대해 한마디도 물어본 적이 없었다. 김은희는 내 은시계에 넣으라고 자기 사진을 하나 보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서울을 떠나는 날 서울역에서 그녀의 지기이던 평양 출신의 이용설 박사와 내가 배웅을 나갔다.

그리고 6.25가 났다. 종래 소식이 끊어졌다. 아마 대단한 평양 부호였으려니 싶은데 공산당 손에 견뎌나지 못했을 것이다. 그 당시 그녀가 도움을 요청했더라면 나는 적극 도울 수 있었다. 그러나 아무 뒷소문도 듣지 못했다. 몇 해 전 그녀의 제자라는 사람이 나를 찾아왔다. 나는 그녀의 사진을 그 제자의 청에 따라 스승의 기념품으로 전했다....... (최태영 회고록, 인간단군을 찾아서, 학고재, 156-158쪽 부분)

  택도 없는 옛날 이야기


The Ventures, Hokkaido Skies





  딸기 | 05/08/2008 05:27.PM
  iam1969 | 08/07/2008 11:35.P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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