September 2007 Archiv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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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30. Sunday

평등과 자유를 갈망하는 사람들의 음악 - Haden & Jones

공연소개를 옮겨 보면;
After a combined century of creating cutting edge American Jazz, Hank Jones and Charlie Haden return to their roots and crafted a beautiful, Monk-inspired masterpiece. In 1995 the two veterans released Steal Away, a landmark album of rural hymns and spirituals that could be said to mediate on the countryside foundations of Monk's own music. Pianist Jones is now 89 years old, and according to Gary Giddins in the New Yorker, he has never played better. Bassist Haden is one of America's living jazz greats, a founding member of Ornette Coleman's legendary original quartet and a pioneer in multiple genres. This concert presents a rate opportunity to hear these two masters play music from Steal Away, riffing on their musical homage to jazz's rural roots within a framework of Monk's life and homeland. The sources of Monk's own music lie in a devout religious background, cultivated in North Carolina, and in his travels with an evangelist during the heart of the Great Depression. This special concert even brings two living jazz legends together to play out their own version of that story. As Maurice Jackson's brilliant, Grammy nominated liner notes to Steal Away tell us: "This music was the product of an enslaved African people. [...] Many of these songs are from a people yearning for equality and freedom, in this world and the next."

Monk도 모르고 Hank Jones도 모르면서 Charlie Haden 꼭 한번 보고 싶어서 다녀왔는데, 파리 한번 다녀온 앙띨레스 사람, 평생 파리를 마음에 담고 죽을때까지 그 이야기만 한다고 하듯 그리되지 않으리라 장담할 수 없겠습니다.





Spiritual Charlie Haden (Bass) Hank Jones (Piano) Steal Away


2007.09.27. Thursd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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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9.26. Wednesday

[Neruda] Peace for the coming twilights

VI. Peace for the coming twilights from IX. Let the Woodcutter Awaken (Canto General)

Peace for the coming twilights,
peace for the bridge, peace for the wine,
peace for the letters that seeks me
and that rise in my blood entwining
the old song with land and loves,
peace for the city in the morning
when bread rises, peace for the
Mississippi River, river of roots,
peace for my brothers' shirt,
peace in the book like a stamp of air,
peace for Kiev's great Kolkhoz,
peace for the ashes of these fallen,
and these other fallen, peace for Brooklyn's
iron black, peace for the mailman
from house to house like the day,
peace for the choreographer who shouts
to the vines with a megaphone,
peace for my right hand,
which only wants to write Rosario:
peace for the Bolivian secretive
as a tin stone, peace
that you may marry, peace for all
the Bi`o-Bi`o's sawmills,
peace for the broken heart
of warring Spain:
peace for Wyoming's little Museum
whose sweetest thing
is a pillow with an embroidered heart,
peace for the baker and his loves
and peace for the flour: peace
for all the wheat that need bring forth,
for all the love that will seek foliage,
peace for all the living: peace
for all lands and waters

Here I say good-bye, I'm returning
home, in my dreams,
I'm returning to Patagonia where
wind pounds the stables
and the Ocean spatters ice.
I'm nothing but a poet: I love you all,
I've wandered the world that I love:
in my homeland they imprison miners
and soldiers command the judges.
But I love even the roots
of my cold country.
If I had to die a thousand times
I want to die there:
if I had to be born a thousand times
I want to be born there,
near the wild araucaria,
the south wind's bluster,
the newly purchased bells.
Let no one think about me.
Let's think about the whole earth,
pounding with love on the table.
I don't want blood to soak
the bread, beans, music,
again: I want the miner,
the little girl, the lawyer, the doll
manufacturer to accompany me,
let's go to the movies and set out

to drink the reddest wine.

I don't want to solve anything.

I came here to sing
so that you'd sing with me.

Translated by: Jack Schmitt
Pablo Neruda, Canto General, Jack Schmitt (Translated), Univ. of  California Press, pp 270-27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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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ZW

2007.09.26. Wednesday

최저생계비 설정은 사회안전망 구축의 핵심

우리나라의 최저생계비는 3년마다 한번씩 중앙생활보장위원회(위원장: 보건복지부 장관)에서 결정된다. 지난 8월 내년도 최저생계비가 결정되었는데 혼자 사는 가구의 경우 한 달 최고 46만원을, 4인가구의 경우 한 달 최고 120여만원을 최저생계비로 지급받을 수 있다. 이번 결정으로 직접 영향을 받는 기초생활수급대상자는 전체 인구의 3%를 상회하는 1,600,000명(160만)에 이른다. 무엇보다 최저생계비의 결정이 중요한 이유는 통상적인 최저소득기준, 공공부조기준 그리고 절대빈곤선의 기준이 되기 때문이며 (김미곤, 2007)  한 사회의 한정된 자원을 가장 정의롭게 사용하는 방법은 가장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우선적으로 분배하는 것이라는 롤즈의 기본적인 정의론에 비추어 보아도 최저생계비를 결정하는 문제는 사회복지정책의 대상과 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기본이자 사회안전망 구축의 핵심적인 내용이 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최저생계비를 계측하는 방식은 전물량방식(Market-Basket, Rowntree), 반물량방식(Engel, Orshansky), 상대적빈곤선 설정, 수준균형방식 등의 방법이 있다. 우리나라는 전물량방식을 사용하고 있는데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모든 생활품목들을 나열하고 최저기준가격으로 그 품목들을 계산하는 방식이다. 오샨스키 방식이라 불리는 반물량방식은 기본적으로 소비하는 식품비를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산출하는 방식이고 상대적 빈곤선 측정 방법은 예컨대, 전체가구 중위소득(median)의 30% 혹은 50% 등과 같이 전체 인구의 소득을 기준으로 최저생계비를 정하는 방법이다. 윤홍식(2007)에 따르면, 수준균형방식은 최저생계비를 통해 양극화를 해소하는 것이 당장 현실적으로 불가능 하다면 지금 수준에서라도 막기 위한 하나의 차선책이 된다고 한다.

"1999년 측정한 최저생계비 수준이 미덥지 못하고, 지난 2004년에 측정한 기준 조차 과학적이지 않다면 지금 마련하고 있는 최저생계비 수준을 도시근로자 평균소득에 고정시키는 '수준균형방식'을 취하자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2007년 현재 전물량방식에 의해 측정된 4인가구의 최저생계비가 120만원이라면 이를 도시근로자 평균소득(또는 다른 기준이 되는 소득)의 몇 %인지를 정하고 그 비율로 최저생계비를 고정시키자는 것입니다 (윤홍식, 2007)."


한겨레신문, 후퇴하는 '삶의 방어선' 최저생계비 (하), 2007.07.19

1999년 최초로 최저생계비가 계측된 이후로 최저생계비의 도시근로자 평균소득 (4인가구 기준) 대 비율은 지속적으로 감소하고 있는 추세이다. 일반적으로 평균소득은 소득분포의 양 가장자리에 아주 낮거나 아주 높은 소득이 존재할 경우 영향을 쉽게 받는다. 지난 10년간 근로소득자 내에서도 소득의 불평등과 양극화가 진행되어 왔음에 볼때 평균소득 대 비율이 (중위소득 대 비율과 비교하여) 저평가 되었을 가능성을 배제 할 수 없지만 그 기간 소비자 물가상승률과 (2000년 2.3%, 2003년 3.6%, 2006년 3%) 경제성장률 (2006년 5.1%)을 고려해보면 7년간 27만원의 명목적인 증가는 결코 높은 수준이 아니기도 하고 원칙이 있는 과학적인 결정도 아니다.

올해의 최저생계비 결정에서 보건복지연구원이 5.8% 증가를 주장했으나 최종적인 단계에서는 전년 대비 5%의 수준에서 결정 되었다고 한다. 정책결정자들이 생각하기에 우리사회에서 용인되는 사회적 합의의 수준이 5%인지, 과학적 결론이 5%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전물량방식으로 측정되는 현재의 측정방식은 결핍으로서의 절대적 빈곤의 기준선을 제시하기에도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지금의 기준에 따르면, 유선전화나 공중전화가 있기 때문에 핸드폰 사용은 최저생계비에 포함되지 않고, 빗자루라는 대체제가 있기 때문에 진공청소기도 최저생계비에 포함되지 않고, 집에서 따뜻한 밥 먹으면 되기 때문에 가족 외식비도 최저생계비에 포함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특정 항목을 최저생계비 계측에 포함 할 것인가의 문제는 최저생계비 계측에 있어서 결코 핵심적인 내용은 아니다 (윤홍식, 2007) 요컨대, 수준균형방식은 최저생계비 계측에 있어 전물량방식이 비과학적이라는 논란을 피하고, 개별적인 선호를 무시하는 전물량방식의 비효율성을 극복하는 동시에 새로운 계측방식에 대한 시간과 비용을 줄이는 대안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윤홍식, 2007). 

결국 금년의 최저생계비 계측은 전물량방식에 의한 기존의 계측방식을 통해 이루어 졌으나 수준균형방식이나 상대적 빈곤선 설정의 잠재적인 파급 효과를 생각해 볼 수 있다. 최저생계비를 전체근로자의 임금과 매개 시키는 것은 저소득층, 불안정 임금노동자, 전체 노동자의 과 연대라는 긍정적인 측면과 그와 동시에 평균 임금하락시 발생 하는 불안정성이 저소득층에게 그대로 전해질 수 있다는 부정적인 측면이 있다. 결국, 어느쪽이던지 빈곤과 노동의 문제를 동시에 다루지 않고서는 해결할 수 없는 문제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장기적으로 교육, 육아, 출산, 의료 등 사회적 서비스의 탈상품화의 정도와 내용을 알차게 추구하는 것 그리고 중장기적으로 그것을 가능케 하는 좌파정당의 의회 점유 수 (Huber & Stephens, 2001)를 늘리는 것과 동시에 긴급하게 빈곤과 노동의 문제를 하나의 패키지로 묶어내는 방책과 정책안을 찾아내는 것이다. 수준균형방식은 사회적 연대를 통한 사회적 안전망의 설정이라는 측면에서 시사점이 있다 하겠다.

중위투표자정리(Median voter theorem)

(희망적인 바램이지만) 경제적 이해관계의 공유는 사회적 행태에서 유사한 점을 보이는 경우도 드물지 않다. 중위투표자정리는 다수결의 원칙이 적용하는 비시장적 의사결정과정은(투표, 선거) 표준분포의 중간을 차지하는 다수의 사람들에 의해 결정된다고 이야기 한다. 예컨대 서구 복지국가에서의 경우 이 중간을 차지하는 대다수의 사람들이 노동계급이며 좌파정권 (사회민주주의정당, 사민.녹색 연정)의 전통적인 지지기반이 되어 왔다는 것인데 노동계급은 탈상품화를 지켜내기 위해 좌파정권을 지지하고, 좌파정권은 지지기반을 보장하기 위해 탈상품화 정책을 포기 하지 않는 선순환구조를 지켜낸다는 것이 복지국가의 발전에 대한 한 전통적인 설명이고 퇴색하기는 했지만 많은 부분 아직도 유효하다고 볼 수 있다.

생각컨대, 수준균형방식은 최저생계비에 전적으로 의존해서 살아가는 빈곤계층이나, 저소득층, 불안정한 고용구조에서 살아가는 임금 노동자 모두를 위협하는 불안정성에 대한 기초적인 대응이며 복지의 대상과 규모를 확대할 수 있는 기준이 됨과 동시에 정치적 의사결정과정에서의 연대라는 잠재성을 가지고 있다. 단 좋은 방향인지 그 반대인지는 ? ? ?


김미곤: 최저생계비 쟁점과 개선방안, [토론회 자료집] 최저생계비의 적정성 평가와 대안 모색
윤홍식: 참여연대 최저생계비 바꾸기 릴레이 편지 5
한겨레신문 (2007.07.18) 정세라 - 후퇴하는 ‘삶의 방어선’ 최저생계비(상)
한겨레신문 (2007.07.19) 정세라- 후퇴하는 ‘삶의 방어선’ 최저생계비(하)
Huber, E., & Stephens, J. D. (2001) Development  and crisis of welfare state: Parties and politics in global markets, The University of Chicago Press.

그 외 (미국);
Department of Health & Human Services, FAQ related to the poverty guidelines and poverty.
Fisher, G. (1997), The development and history of the U.S. Poverty Thresholds - A brief overview, GSS/SSS
Newsletter.
Panel on Poverty and Family Assistance (1995), Measuring poverty: New Approach, National Academic Press, Washington. D.C.

2007.09.14. Friday

용의 전쟁

몇 주 만에 기다리던 비가 왔고 저녁 무렵엔 학교 행사에 잠시 참석하고 동네 영화관에서 Dragons War를 봤다. 800만이라는 숫자는 소수의 독특한 취향과 거름지고 장에 가는 행위를 동반한 다수의 호기심을 반영한 것이 틀림없으리라. 오픈아이에 들러 레드아이 한잔 하는 동안에도 특별한 감상도 없었다. 선거만 되면 일천만 명 이상의 어른들도 독특한 행태와 취향을 드러내는데 기껏 영화 한편 보는 소비자의 선택에 합리적이니 비합리적이니 하는 이야기가 깜이나 되겠나. 그나저나 오늘 극장에 열명 정도 보이던데 용용 곧 죽겠다.  



2007.09.10. Monday

[네루다] 평화 있어라


네루다
김남주 번역

날마다 찾아드는 황혼에 평화 있어라
다리 위에 평화 있어라 술에 평화 있어라
내가 사용하는 언어에 평화 있어라
그리고 나의 가슴에 올라와서
흙냄새와 사랑으로 가득 찬 옛 노래를
펼쳐주는 언어에 평화 있어라
빵 냄새로 눈을 뜬
아침의 도시에 평화 있어라
많은 강을 끌어들인
미시시피 강 위에 평화 있어라
내 아우의 내의에 평화 있어라
바람이 쓰고 간 것 같은 책에 평화 있어라
키에프의 대 콜로호즈에 평화 있어라
사방팔방 쓰러져 있는 사자들의 재 위에 평화 있어라
브룩클린의 검은 조교(弔橋)위에 평화 있어라
햇살처럼 집에서 집으로 도는
우편배달 위에 평화 있어라
메꽃과 같은 발레의 무대에서
소리치고 있는 안무가 위에 평화 있어라
로사리오에 대해서만 쓰고 싶은
나의 오른손에 평화 있어라
주석(朱錫)처럼 숨어 있는
볼리비아 인에게 평화 있어라.
 그대가 시집갈 수 있게끔 평화 있어라
비오비오의 모든 제재소에 평화 있어라
스페인 게릴라의
파괴된 심장에 평화 있어라
비둘기를 수놓은 방석이
가장 그리운
와이오밍의 조그마한 박물관에 평화 있어라
빵집과 그 사랑에 평화 있어라
밀가루 위에 평화 있어라
이윽고 싹을 내미는 보리에 평화 있어라
살아 있는 모든 것에 평화 있어라
모든 대지와 물 위에 평화 있어라
 
자 이제 나는 여기서 작별을 고하고
꿈에도 그리던 나의 집으로 가련다
거친 바람이 외양간을 두드려대고
얼음덩이가 바다로 떠내려가는
파타쾌아로 돌아가련다
나는 일개 시인이다 당신들이 좋아하는
나는 사랑하는 세계를 떠돌아다녔다
나의 조국에서는 광부들이 감옥으로 끌려가고
군인들이 턱으로 재판관들을 부려먹고 있다
그러나 나는 이 춥고 조그마한 나라를 뿌리까지 사랑하고 있다
만약 천 번을 죽는다면
나는 그때마다 그 곳에서 죽고 싶다
만약 천 번을 다시 태어난다면
나는 그때마다 그 곳에서 태어나고 싶다
저 우악스런 아라카우 족 곁에서
교회의 종루가 새롭게 세워지는 곳에서
나는 바란다 아무도 나에 대해서 마음쓰지 말기를
사랑의 주먹으로 책상을 치면서
이 지상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으려는가
나는 바라지 않는다 다시 빵에 피가 묻는 것을
강남콩에 피가 빨갛게 물들고
음악이 피를 쏟아내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나의 소망은
광부도 처녀도
변호사도 어부도
인형 만드는 사람도 모두
나와 함께 가는 것이다
우리들은 모두 영화관으로 들어갈 것이다
그리고 영화가 끝나면
붉은 포도주를 마시지 않으려는가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온 것은 아니다
나는 이 곳에서 노래하지 위해 왔다
나와 함께 그대도 노래해주기를 바라면서.


2007.09.08. Saturday

은박지에 새긴 사랑 외 3

   조봉암과 진보당'은 경성 트로이카를 읽고 난 다음 문득 오래전 보았던 진보당 강령을 책으로 보고 싶어서 구입했고 브레히트의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로 먼저 만난 김남주 시인의 번역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는 절판으로 구입하지 못하고 혹여 1권 마저 절판될까 걱정되어 은박지에 새긴 사랑을 구입했다. 동물원, 김동률, 015B, 성시경등의 가수와 노래는 취향이 달라서 혹은 그냥 싫어서 별로 듣지 않는 편인데 이적의 3집은 오직 '사랑은 어디로'를 듣기 위해 구입했고 언제부턴가 그 목소리가 참 좋다는 생각을 하고 있는 중이다. 김정미의 복각 씨디는 1972년 발매된 신중현 작곡집이기도 하지만  끈끈하게 젖어드는 김정미의 목소리를 꼭 듣고 싶어서 구입했다. 과연 "하루 갇혀 있으면 천 번의 가을은 밖에 있다 (一日囚, 千秋在外)" 는 古人의 말도, 胡志明의 말도 그를 옮긴 김남주 말도 "틀림이 없다(不差訛)". 바라건대 비 한번 오면 가을이 성큼 다가 올 것 같은데.......


   

2007.09.03. Monday

나비

느지막한 오후, 저 작은 짐승이 창가에 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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