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성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에서 마주치는 상징들과의 대화이다. 나는 그들을 볼 뿐만 아니라 스스로를 봐야 했다. 노동당사에서 고인 빗물에 비친 창 그림자를 보며 나는 창을 통해 볼 뿐만 아니라 창 자체를 봐야 할 필요를 발견했다. 이미 내가 보고 있는 것은 길들여진 보는 방법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내가 이른 길이 보는 방법의 해체는 아니다. 3부 철원역터의 고인 빗물에서 나는 '우리는 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물을 통해 보는 것이며, 물 없이도 자신을 볼 수 있는 눈은 역사의 눈' 이라는 생각에 이른다. 역사는 해석방법에 따라 달라지는 텍스트가 아니라 생생한 실제이며 사람의 생활과정이기 때문이다. 고성 통일전망대의 망원경 앞에서 본다는 것이 간절함을 관성화 시키는 제도임을 발견한 것도 바로 사람과 역사의 눈을 통해서이다. 보고 또 보고가 아니라 보고 만져보고, 냄새 맡아 보고, 부둥켜 안아보는 것이 사람과 생활의 발전순서인데 그 자연스런 본성을 부분 허용할 때 애절함은 서서히 관성화 된다. 역사의 눈, 사람의 본성이란 관점에서 봤을 때 비무장지대와 그 접경지역에서의 만남은 새로운 것이었다 (94쪽, 이시우, 비무장지대에서의 사색)
이시우 작가는 아직도 국가보안법 위반으로 서울 구치소에 수감 중이다.
2007.09.14 이시우 작가 서울 구치소에서 보석 석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