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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03.31. Saturday

망치부인

어제 밤엔 아프리카에 잠시 들어갔다가 묘한 망치부인의 매력과 허영의 살인미소에 빠져 이 생각 저 생각하면서 시간을 잠시 보냈다. 망치부인은 여기에서도 만날 수 있다.



2007.03.30. Friday

김옥선 할머니와 강주혜 사무국장님의 말씀에 대한 요약 혹은 디브리핑

제목: Korean Comfort Women; Survivors of Military Sexual Slavery Speak Out
일시: 3월 30일 오후 1시 30분 - 오후 3: 30분
장소: 5층 라운지. School of Social Work, University of North Carolina at Chapel Hill
인원: 대략 50명, 생각보다 한국 학부생들이 많이 왔고, 외국인들도 한 절반 정도.

김옥선. 1932년 안동 출생. 16살에 일본 순사에게 강제로 끌려가 부산항에서 타이완으로 실려가 전쟁이 끝날때까지 8년동안 강제로 위안부 생활에 동원됨. 위안부 생활로 인한 건강상의 문제로 자궁을 들어내었다. 현재 경북 예천에서 혼자 생활하고 있음.

16 살에 친구 정남이랑..15명이 타고 있는 도라꾸에..강제로 태워짐..재수없이 잡혔다... 부산. 배. 날 짐승이 날아다니고 물이 하늘 꼭대기에 닿는 곳에 실려서.. 밤 사흘 낮 사흘 지나 대만에 도착...실려온 17명중에 10명을 추려서 남안군도로 배를 태워 보냈다....나와 정남이는 남았다. 구멍도 없는 것을 붙혀 주었다고 일본군이 이야기...나는 늦자라서 쪼만했다... 꼼짝마라..죽었다. 소변도 고통스럽고..쉬고 싶은데 밖을 보니 일본군이 줄을 서가있더라...그 사람들을 다 받아내어야 한다...밤도 없고 낮도 없고 교대로 교대로 받아내다...50명. 60명. 70명. 까무러치면 물 퍼붓고...맞고...그 군인들은 오늘 죽을지 내일 죽을지 모르니까..여자 보고 가라꼬 그란다...평일 400명...주말 1000명도 왔다. 100명을 받은 이쁘게 생긴 처자는 죽었다. 우유처럼 허연기 있더라... 목 매 죽고, 미쳐서 죽고 그래도 때릴 수록 내가 강해진다....지금까지 약 안 먹으면 못 산다...성폭행...한 사람한테 우야다가 한두번 했다고 치자...한사람을 데리고 7-8년을 그랬으니..그건 성노예다. 하루에 79명을 받았는데도 뭐가 많으냐고 하더라. 전쟁에서 밀리니까..연합군이 밀려 오니까 더 지랄. 환장하더라. 우리 둘째 오빠도 노무자로 가서 죽었다. 큰 오빠는 징용 피하러 경기도로 가서 숨어지내다가 결국, 나중에는 탄광에서 죽었다. 둘째 오빠는 오키나와에서 죽었다. 촌사람들 쌀이고 숟가락이고 다 들고 갔다. 군화발로 턱 쪼가리를 막 쳤다. 남안군도로 간 10명을 다 죽고 7명 중에 나하고 정남이만 남았다. 히로히토가 라디오 방송을 할려고 하는데...일본이 지는 갑다 하니까. 긴 칼 찬 대위가 날 죽일려고 하더라...그래서 내가 틀리면 나를 죽이고 내가 맞으면 니를 죽일끼다 했다....이판사판...죽기 아니면 살기...막 때려요...니 죽는데이..가만히 있거라..있거라 해요...뭐 맞으면 자뿌러지는기지...지금도 눈에 선하다...마흔 대여섯살 된 소령이 있었는데...그만 때리라카데...내 나이하고 비슷한 딸이 있단다. 전쟁에 져서 막판이 되자 칼을 던져주고 자살하라고 한다...우리 아버지가 내가 살아오라고 8년을 빌었단다....내 한테 죽으라고 칼 준 그 군인은 나중에 들었는데 자살했단다... 내 하고 정남이는 산에 숨었다....십리 이십리 걸어가서 음식 구하러 내리갔다...일본놈이라고 밥을 안준다...korean 이라고 이야기는 하는거는 배워가꼬...그래 이야기 하니까 밥을 주더라...그 동네는 귤. 바나나. 파인애플. 바가지 같은 야자도 많고...사람들은 우와기는 입었는데...기지로 아래도리 두르고...맨발로 다니더라. 일본 군대로 간 한국 사람을 만났다...네 사람인데..두사람은 평안도 사람. 두 사람은 마산 사람인데....꼴은 거지 같이 해가꼬...보자마자 동상들 조선사람 아이가...하고 묻더라...한국이 독립이 되었다고 이야기 해 주더라....같이 일주일 동안 아무것도 안 묵고 물만 묵고 길을 나섰다. 마산 사람이 그라더라...동상들은 몸을 배리가꼬 고향에 우예가노...일주일만에 아주 오래된 배를 하나 구했다....어찌어찌해서 부산에 도착했다...도착하니까 돌림병이 돈다꼬..사흘동안 배안에서 있으라 카더라...사흘을 굶었다...부둣에 내리니까..노부부가 점방을 하나 하고 있는데...영덕사람이란다...무남독녀가 내 처럼 끌리가가꼬 오늘까지 안 온단다....영덕에서 몽땅 정리하고 딸 기다린다꼬...부둣가로 옮겼단다....그때까지 안오먼 죽은기지 뭐. 가랭이에 고름집이 생기가꼬...아빠 엄마가 고치주께 그랬는데....수술을 몇번이나 했는지 모른다....의사가 치료가 안되는 기라 그러더라....폭력이 아니고...사람 죽으라고 하는 짓이야. 사람 사는 것이 아니야...바쁜데 이리 와줘서 고마워요.

강주혜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사무국장.

이런 모임이 있으면 항상 마음이 무겁다. 편히 쉬셔야 할 할머니가 이런 긴 여행과 이벤트를..그리고 아픈 이야기를 모르는 사람에게 이야기 하는 것은 어렵다. 위안부 문제는 국가가 조직적으로 개입한 범죄. 군인들의 사기진작과 안전한 성욕해소를 위해서 위안부를 동원했다. 남아있는 군의관의 기록을 보면 위안부를 '천황의 선물' '성배설을 위한 위생적인 변소'라고 했다. 주로 11세에서 27세의 여성이 끌려갔다. 전쟁이 벌어지는 곳이면 항상 데리고 갔다. 죽거나 버려졌다. 전쟁 후 해결에 대한 논의는 전혀 없었다. 연합군도 아시아 여성에 대해서는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1990년대에 이르러 한국 사회의 변화..여성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일 정도의 토양이 마련되었다. 정대협(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이 17년동안 활동해 오면서 일본정부의 대응은 한번도 없었다. 일본정부 대 정신대할머니. 아시아 여성의 구도는 아니다. 인권의 문제다. 60년전의 문제가 아니라 생존의 문제...현재 진행형...1992년 부터 수요집회 해오고 있고...희망. 관심 지지....위안부 문제에 대해 미국 하원에서 의결이 이루어 질 수 있도록.....4월중에 아베가 미국에 오는데 아마 통과 되지 않도록 노력 할 것 같다. 지금 한국에 김옥선 할머니 같으신 분이 120분 정도 계시는데...김옥선 할머니가 그래도 가장 건강하신 편에 속한다...우리 같은 활동가들이 이야기 하는 것과 피해자이신 할머니가 목소리 내시는 것과는 다르다...힘겹지만 우린 이길을 계속 간다. 할머니의 마지막 불꽃....현재 한국. 대만. 중국에서 위안부로 끌려가신 분들을 기념하기 위한 박물관. 기념관 등을 계획하고 있고..일본에는 조그마한 자료관 설립이 진행되고 있다.

객석 질문:

1.정남이 할머니는 어떻게 되셨어요?
몸도 약하고..마음도 약해서..결국 미칬다.

2. 정부에서 할머니들에 대해서 특별하게 해 주는 것이 있는가?
특별하게 해주는 것은 없다(사무국장)....할머니가 노무현 대통령...하시다가 말을 멈추셨다.

3. 위안부 문제에 대한 영화나 비디오. 책. 영상자료 같은 것은?
오늘 여건상 다른 곳에서 본 비디오를 보지 못했다....우리가 가지고 있는 자료는 다 한국어다....영어로 된 책이 하나 있었는데...절판되어 이제는 나오지 않는 것으로 알고 있다.

4. 할머니들을 위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것은?
유학생들은 거쳐 가는 사람들이지만 소규모의 그룹으로 인권에 대해서 이야기도 나누어보고...네트워크를 형성하면 좋겠다...(듀크 여성 센타 직원이 말하길) 박물관이나 기념관 짓는 데 도네이션 하는 것도 좋고.....

5. 할머니 예천에서 혼자 사시는데 평소에 주로 우예 지냄니꺼?
하는 것 없어요....약 안먹으면 죽는데.....45년 정도 살아왔으니 친구들 주로 만나고....구청...복지과...요새 구청에 복지과 있잖아요 (복지관을 말씀하시는듯)...거 나가고

2007.03.29. Thursday

주제파악



볼 때 마다 저 모습으로......... 바쁜 척 하는 사람, 사람 만나기 좋아하는 혼자 사는 사람은 강아지 키우지 마세요. 결국 모두에게 잔인한 일이 되니까. 달마야......


2007.03.25. Sunday

참말로 봄이다.

스노우맨 이젠 안녕.
 

나는 봄맞이 간다.
 

계절은 하늘을 자유롭게 풀어 놓고

 

길을 나서니 내 집 같아라.

 

한마디의 당부를 던진다.

 

높아지는 태양은 부디 길가 복사꽃 나무를 잘 지키고 계시오 !

 

가장 너른 풍경을 보기 위해 가장 너른 창이 필요한 건 아니지만



한눈이라도 크게 떠야지.


어지럽힌 머리는



가리면 되겠지만



푸르고
 

붉은



이 화창함을 어찌 할꼬. ^^




2007.03.24. Saturday

요염하게

몇 달 만에 카메라에 든 필름 한통을 겨우 다 찍고 현상을 맡겼다. 그 중에 우연히 만난 동네 아저씨 사진 한 장 올린다. 그 아저씨 설명에 따르면: 머리 잘라준 흑인 아줌마가 머리는 항상 젤 같은 것으로 뒤로 넘기고 다닐 수 있도록 잘랐다고 하더니 물만 바르고 나가는 날이면 항상 오후가 되면 힘없이 그냥 내려온다고 한다.
 


2007.03.23. Friday

Rock Me Amadeus



15-501 N Highway Child /ㄱ.ㄷ.ㄱ


항상 마음만 달린다. '산 넘고 물 건너 태양계를 지나 빨강 파랑 Black & White 아무 곳도 향하지 않은 채' ^-^

2007.03.23. Friday

너는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살아야 한다

6년의 기간으로 계획된 패널 연구도 이제 2번의 서베이만 남았다. 센터에서 처음 일하기 시작한때가 첫 번째 연도 데이터가 막 나올 때쯤이었는데 세월은 흘러 오늘은 다섯번째 해 설문지에 들어갈 항목에 대한 최종적인 검토를 했다. 아르헨티나 출신의 도시계획과 교수인 소장, 금융기관에서 수십 년 근무한 부소장, 심리학 박사인 연구부장, 가계대출을 전공한 베이징 출신의 박사 스텝, 주택대출과 연체에 관한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회정책학과 박사과정 학생, 그리고 경제관념이라고 별로 없는 사회사업학과 박사과정 학생(나..)이 모였다. 신용점수. 대출, 상환 등 별 끼어들 틈 없는 대화 속에 웃으며 아는 척 고개만 끄덕거리다가 조심스럽게 우겨서, collective efficacy, schooling expectation, positive behavior scale 항목을 집어넣고 다시금 확인을 받았다. 그런데 한 사회사업학과 교수가 제안해 준 청소년 임신이나 학교중도탈락 같은 것은 '당연히' 잘렸다. 부소장 아줌마의 이야기에 따르면 이러하다. "왜 부정적인 결과만 보려고 하는데?" 음...... 이 아줌마도 대략 천사류?



2007.03.21. Wednesday

Were you ever hungry but didn't eat because you couldn't afford enough food?

지난 밤 아무 책이나 꺼내 들고 누웠다. 시인은 "버스가 달리는 동안 비는 사선이다. 세상에 대한 어긋남을 이토록 명쾌하게 보여주는 유리창..... " 이라 이야기 했지만 시인도 세상이 어긋난 것이라 생각하고 있으리라. 나이 들면 주책만 늘어난다고 하는데 오늘은 그동안 별 뜻 없이 지나쳤을 설문지 문항에 마음에서 땀이 다 난다.

In the last 12 months, did you ever eat less than you felt you should because there wasn't enough money to buy food?
In the last 12 months, were you ever hungry but didn't eat because you couldn't afford enough food?
In the last 12 months, did you lose weight because you didn't have enough money for food?
In the last 12 months, did you ever not eat for a whole day because there wasn't enough money for food?

결국 자유의 속성은 기호에 가깝고 평등의 속성은 가치일지도 모르겠다. 알파요 오메가라고 하는 그 가치 말이다.

 
영화 '아무도 모른다' capture.

숨 / 이자람


2007.03.20. Tuesday

김조년 - '씨알'이 '애국지사'가 되던 날

오랜만에 김조년 교수님이 발행하는 표주박 통신을 찾아 읽다가 함석헌 선생님에 관한 내용이 있어서 옮겨 본다.

김조년, '씨알'이 '애국지사'가 되던 날

        2006년 10월 19일은 청명한 날이었다. 파란 하늘에는 뭉게구름이 평화롭게 떠다니고 있었다. 대전국립현충원의 넓은 묘역에는 고요가 가득하였다. 원래 그 곳은 평안한 땅이다. 주변에 둘러쳐진 산으로 아늑하면서도 옹색하게 보이거나 느껴지지가 않고 훤히 넓으나 힘없이 퍼져있다는 허한 느낌이 없는 곳이다. 대전이라는 큰 도시가 바로 붙어 있지만, 전혀 도심의 소음이나 번잡함이 전해지지 않는 곳이다. 누가 그곳에 국립묘지를 잡았는지 자리를 잘 잡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공원으로 잘 꾸며놓아서 봄부터 가을까지 많은 꽃들이 피는 것을 볼 수 있고, 잔디들이 잘 가꿔져 있다. 아무튼 정성을 많이 잘 쏟는다는 것을 느끼게 한다. 19일은 바로 그 자리에 우리가 흠모하고 우러러보는 함석헌 선생이 '애국지사 제3묘역'에 안장되는 날이었다. 시간에 맞추어 갔다. 평상시, 이러저러한 씨알모임에서 종종 뵙던 분들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선생의 후손들, 그러니까 아들, 딸, 사위, 며느리, 손자와 손녀들 그리고 증손들을 만날 수 있었다.

        오후 2시가 되어 다른 몇 분의 '애국지사' 또는 '호국지사'들과 함께 안장되는 식이 진행되었다. 나팔소리가 울려 퍼지고 조포가 울리고, 식을 진행하는 중요한 사람들이 차례로 합동분향소에 분향하고 꽃을 바쳤다. 그리고 유족들을 대표하여 각각 몇 분들이 그렇게 하였다. 하얀 종이로 싸인 유골항아리가 미리 파놓은 땅에 내려지고 흙이 뿌려졌다. 잘 고른 마른 흙이었다. 유족들이 먼저 흙을 뿌리고, 참석한 사람들이 흙을 뿌렸다. 일을 담당한 분들이 흙을 채우고 임시로 봉분을 만들고, 서로 기념사진을 찍었다. 나뿐만이 아니라 거기에 참석한 많은 사람들이 묘한 기분에 싸였을 것 같다. 함석헌과 '애국지사', 또는 함석헌과 '국립묘지'. 이것을 연결시켜 생각할 때 이것들이 어떤 조합이 될 것인지를 생각하면 더욱 그러할 것이다. 물론 경기도 연천군 전곡읍 간파리 마차산 자락에 묻혀 있던 님, 그 주변이 무수히 많은 쓰레기들을 묻는 폐기장으로 변한 것을 본 사람들은 그곳에 그 님을 그렇게 방치하여 두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하였을 것이다. 특히 유족들은 더욱 그러하였을 것이다. 어딘가로 이장하여야 할 것인데, 독립유공자가 되어 있었던 그에게 그대로 사설 묘지에 안장할 것인가? 아니면 국립묘지로 옮길 것인가를 논의하고 걱정하였을 것이다. 나중에 관리하는 문제를 깊이 생각하여서라도 어느 의미 있고 편리한 곳으로 이장하는 것이 바람직하였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이들은 국립묘지로 옮긴다면 서울 4.19묘지가 적절할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였고, 어떤 이들은 아예 국립묘지를 생각하여서는 안 된다고 주장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어찌 되었든 국립묘지 대전 현충원에 모셔지게 되었다.
       
        그날 날씨는 참으로 좋았다. 춥지도 않았다. 멀리까지 볼 수도 있었다. 그래서 그런지 편안하게 느껴지는 자리였다. 그 자리를 풍수지리를 하는 사람들이나 음택을 고르는 사람들은 그 중에도 어느 자리가 좋거나 나쁘다는 것을 말하겠지만, 높고 낮은 산으로 둘러싸인 그곳은 아주 시원하고 아늑한 곳으로 일단은 좋다고 느껴진다. 그런데 내 맘이 참으로 답답하였다. 함석헌은 국가주의를 온 몸으로 반대하였다. 그러나 국립묘지란 개념은 원래 국가주의의 산물이다. 그가 그 자리에 묻혔다. 함석헌은 높낮이를 알 수 없고, 멀고 가까움을 모르는 훨훨 나는 자유혼이다. 그런데 국립묘지엔 아주 질서정연하게 규격에 맞추어진 틀 속에 박히는 전형의 전형이다. 그 자유혼은 그렇게 짜여진 틀속에 감금된 형상이 됐다.

        그는 돌아가실 때 당신을 해부하여 학생들의 실험용으로 하라는 그의 스승 이승훈의 유언을 들어드리지 못한 것을 매우 가슴 아프게 생각하면서 일생을 살았다. 그래서인지 그도 당신의 몸을 표본으로 만들어 실험용으로 쓰게 하라고 하였지만, 유족들은 그렇게 할 수 없었다. 그런데 그가 화장되어 한 줌의 재로 유골함에 담겨져 모두가 찾을 수 있는 이곳에 묻혔다. 그는 사람을 겉으로 판단하지 않았다. 있고 없고, 잘나고 못나고, 이쁘고 밉고, 높고 낮고, 가지고 없고로 판단하지 않았다. 그런데 국립묘지에는 사회에서 가졌던, 아니 사회에서 판단하는 위계체계에 의하여 판단된 모습으로 철저하게 계급이 달려져 묻힌다. 죽어서도 살았을 때 가졌던 그것을 그대로 가지고 구별되어 묻힌다. 쉽게 이름붙이고 개념 속에 넣을 수 없는 씨알이요 맨사람이요 들사람을 주장했던 그이는, 아니 그것으로 살았던 그이는 죽어서 꼼짝없이 '애국지사'란 이름으로, 3**호라는 번호로 관리되는 틀 속에 묶이고 말았다. 그것이 말을 쉽게 하지 못하게 하는 부분이다.

        아무도 그의 이름을 몰라주고, 그가 무슨 일을 하였는가를 몰라주는 것보다야 낫다고 하겠지만, 속 시원하지 못한 씁쓸함이 있다. 하기야 지금은 고등학교를 졸업하거나 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에게 함석헌이란 인물에 대하여 물어보면 안다는 사람이 지극히 적다. 이런 판에 그를 알릴 수 있는 길을 찾는다는 것은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다른 지역에서 알 만한 사람들이 오면, 안내할 사람들이 오면 국립현충원으로 간다. 어느 친구는 때때로 맘이 울적할 때 그가 묻힌 그 자리에 가서 한 참을 서성이고 온단다. 어느 누구는 정월 초하루가 되면 빠짐없이 그이의 묘소를 찾아 꽃다발을 올리고, 술 한 잔 올리며, 정성스럽게 절을 바친다. 연천 그 산 속에 있을 때는 농사삼아 일삼아 찾아가야 했지만, 물론 그 정성과 바치는 맘이 보통 큰 것이 아니라서 매우 좋은 것이지만, 여기 대전에 있는 묘는 찾기도 쉽고 생각하기도 쉬워서 좋다는 것이다. 누구는 그렇게 말하기도 하였다. '그렇게 대전에서 오르내리며 정성을 바치더니, 선생님을 이곳으로 모셔오게 되었네요.' 그럴까? 그냥 하는 소리겠지만, 정말 그러할까? 그 뒤 몇 번 그곳을 찾으면서 생각해 보았다. 과연 함석헌은 이 자리가 그이의 자리라고 생각할까? 그렇게 생각하지는 않겠지. 당신 묘에 비석이나 어떤 표시를 하지 말라고 당부하였고, 그렇게 하기만 하면 돌아와서 깨부셔버리겠다고 강하게 말씀하기도 하였으니까.

        그러나 평가와 모심과 처리는 뒤에 오는 사람들의 몫이다. 평가는 다른 말로 하면 모심이다. 사람들이 그를 어떻게 대하고 싶은가 하는 것은 뒷사람들이 어떤 모습으로 그를 찾는가 하는 것과 일치한다. 그래서 기리는 사람들은 그에 대한 책을 만들고, 그의 삶과 사상을 연구하는 모임을 만들고, 기념비를 세우고, 조각상을 조성하고, 해마다 그가 낳거나 죽은 날을 기념하여 의미 있는 행사를 하거나, 기념하는 조직과 단체를 만들기도 한다. 때로는 그의 사상을 실제로 살아보려는 삶의 형태를 꾸려보기도 한다. 그렇게 하여 기리는 사람이 기림을 받는 사람의 사람됨과 정신을 이어가려고 하고, 뒤에 오는 사람들에게 이어주려고 애쓴다.

        이렇게 애쓰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씨알 그가 '애국지사'가 되어 사람들이 쉽게 찾아올 수 있는 곳에 상징의 팻말 하나 세워두는 것은 의미가 있을 것이다. 씨알이 애국지사로 규정되는 것은 아름답지 않은 것이지만, 애국지사를 거쳐 다시 씨알로 살아난다면 괜찮은 일일 것이다. 이제 할 일은 씨알로 살아나게 할 일이다. 그가 다시 사는 것이 아니라, 씨알이 씨알로 퍼지고 자라고 다시 꽃이 피고 열매를 끊임없이 맺는 것이다. 그래서 국가주의, 계급주의, 패권주의, 전쟁제일주의, 물질과 경제제일주의, 경쟁과 자기폐쇄주의 따위를 훼파하고, 훨훨 나는 자유혼의 들사람들이, 맨사람들이, 씨알 되어 자유롭고 평화롭게 함께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는 일이다. 그 때는 '애국지사'란 돌팻말이 사라지고 씨알이라는 산 정신이 훨훨 날아오를 것이다. 아니, 그가 어떤 형식과 틀 속에 갇히든지 상관없이 훨훨 나는 수많은 씨알들이 꽉 막힌 듯한 국립묘지를 자유롭게 드나들 수도 있을 것이다. 아니야. 비록 틀 안에 갇히는 인생이지만, 그것을 넘는 어떤 자유를 상징하는 삶을 기다리는 것이겠지. 그것이 의미겠지.(2007. 1. 1. 성묘를 마치고 돌아와서.)


2007.03.20. Tuesday

오늘 봄날의 밤은 그 길이가 같다.

Vernal Equinox를 '춘분' 이라고 부르는데 그 뜻은 'equal night of spring' 이다. 동양문화권에서는 동지를 새로운 계절의 시작으로 보는데 반해, 서구에서는 춘분을 새로운 계절의 시작으로 보고 있다. 석굴암 부처님이 동지날 해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계신다면, 이집트 스핑크스는 춘분날 해뜨는 방향을 바라보고 있는 식이다. 서양의 관점이던 아니던 간에, 따뜻한 봄날 지구가 새롭게 태어나는 이 밤에는 창문 활짝 열고 지구와의 교감을 시도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으리라.
 
Chapel Hill/ NC Botanical Garden, 작년 4월

At the edge of the world / Charlie Haden et al.



2007.03.19. Monday

Intel Dual Core 에서 Windows XP 시스템 멈춤 현상

두호리닷컴의 블로그 글 XP 시스템 멈춤 현상 해결을 보고 문제를 해결했다. 고전스타일과 클리어타입을 동시에 선호하는 나 같은 사용자는 어떡하라는 이야기냐. 다음에 컴퓨터 바꿈질을 하게 되면 내 꼭 리눅서가 되리라.
 

Chapel Hill / 우연히 찾아낸 이름도 모르는 다리 위에서/크롭.


2007.03.16. Friday

어떤 날은

지난주의 어떤 날은 우연히 만난 낯선 사람과 내가 사랑하는 카보로 길을 같이 걷고 외눈박이 커피숍에서 커피도 같이 마시고.......오늘 같은 날은 생전 처음 보는 사람의 비에 젖은 윗도리 지퍼를 올려주기도 하고........그렇듯……. 떠도는 섬은 바다 같은 빚을 파도에 지고 살고.




2007.03.14. Wednesday

지난 여름의 길을 떠 올리다

West_Cameron_From_Carborro.jpg

지난 여름

나무 / 맥박



세금 돌려 받으면 ** 다시 사야겠다.



2007.03.10. Saturday

Oblivion


Triologue - Speak Low



Somewhere in AZ / Cropping

Oblivion / TrioLogue





2007.03.09. Friday

확률은?

관계지향성 : 42 점 지배욕구 : 56 점
근성과 투지로 상대를 제압하는 "마쵸맨"형

에이. 이게 뭐야.
*
Knowledge of Self / US3





2007.03.07. Wednesday

마음은 한 시간에 3마일을 걷는다

루소가 이렇게 말했다지. '걸음을 멈추면 생각도 멈춘다. 나의 마음은 언제나 다리와 함께 작동한다'
Homo Sapiens, Nomad 그리고 Wanderlust
그러하니......
걷자.




Chapel Hill / W Cameron Ave

봄바람 / 정금화





2007.03.06. Tuesday

예멘 모카 사나

Yemen Mokha Sana'ani 라 불리는 Arabian Mocha Sanani 를 스타벅스에서 하나 사서 왔다. 조금 비싸기는 하지만 이 커피 참 괜찮다고 생각했다. 예멘 커피에 대한 일반적인 정보는 스위트 마리아즈에 있다. 생원두를 사서 집에서 직접 로스팅(오븐에서) 하면 경제적으로 맛있는 커피를 먹을 수 있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오븐 로스팅에서 발생하는 어찌할 수 없는 연기와 균일하지 않은 결과물은 결국 로스팅 전용 솥이나 기계를 사면 모를까 발품 팔아가며 맛있는 레디메이드 커피를 사게 만든다.

맛있는 거피라?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음식은 누군가 나를 위해 차려주는 밥상이듯 당연 커피도 그렇다! 찬바람 쌩쌩 불어올 때 호호 불어가며 '같이' 마시는 자판기 커피 한잔 같은 거시기 말이다.

수니. 봄소식. 스카이라이트. 채플힐


2007.03.05. Monday

촌철살인

일주일에 한번 배달되는 정혜신의 그림 에세이는 메일링 리스트에 가입하거나 직접 홈페이지에 가서 볼 수 있다. 전용성의 간략한 그림과 정혜신의 짧은 글은 참으로 여운이 길다. 가장 최근에 배달된 에세이는 아래와 같다.



2007.03.03. Saturday

방명록

안부와 격려 그리고 민망한 사랑 고백은 방명록에 해 주십시오. 아래 코멘트에 작성 하시면 됩니다. 감사합니다.



2007.03.01. Thursday

형제의 나라에서 온 아슈라

문을 두드려 나가 보니 처음 보는 외국인 두 명이 서 있다. 자신들은 터키에서 왔으며 밑층에 살고 있는 부부라고 한다. 혹시 우리 집이 시끄러워서 불만이라도 있어서 왔을까 하는 생각을 하는 찰나에 특별한 때에 이웃끼리 나눠 먹는 음식이라고 하면서 음식 한 그릇을 내민다. 영어로는 노아의 푸딩(Noah's pudding) 이라고 하고 터키에서는 아슈라 (Ashura') 라고 한다. 아슈라에 관해 설명해 놓은 팸플릿 한 장도 같이 받았는데 (http://www.divannc.org) 설명에 따르면 노아가 방주를 타고 먼 길을 다닐 때 만들어 먹었던 음식으로 이 때문에 사람들은 기근을 면할 수 있었는데 바로 그 다음날 홍수가 끝이 났다고 한다. 지금도 중동지역과 터키에서는 크리스천 공동체나 이슬람 공동체 모두 아슈라 기간에 이 음식을 이웃과 나눈다고 한다. 이해컨대, 아슈라는 순교자와 순교를 기념하고 대속(atonement)을 위한 특정한 기간을 의미하며 동시에 이 기간에 특별하게 먹는 터키 음식 아슈라(Ashura' or Ashure)를 뜻 하는 것이다.

레서피를 옮겨 보면,
1 cup canned white beans
1 cup canned garbanzo beans
1 cup of wheat
1/4 cup rice
1/2 cup raisins
6 dried apricots
6 dried figs
4 cups sugar
water (enough to cover)
Toppings: walnuts, almonds, cinnamon

좀 달다 싶은데 글 쓰는 중간에 다 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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