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 다섯 - 다소 비겁한 변명
서른다섯이라는 나이를 혼자 감당하기 버겁다. 가끔 느끼는 무기력, 불안, 초조함, 들뜸, 외로움......이런것들이 한 개인의 독특한 상황의 산물일 뿐만아니라, 서른다섯, 혹은 언덕에서 내리막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몸으로 가슴으로 경험하는 공동의 떨림이 아닐까 하는 생각 또는 바램이 있다. 그럼 내가 한결 편해지겠다.
때늦은 나이
박노해
오늘로 내 나이 서른다섯인가
부러진 칠십이라 하던가
상처만큼 살았고 겪어온 나이
찬 마룻바닥에 짬밥을 놓고
구매한 되지훈제 한 봉지 사과 한 개 걸게 차려
나이만큼 절실한 생일식사 기도를 드리니
강하고 깃발 날리는 것보다 부드럽고 나직한 것이
더 힘차다는 것을 아는 나이
뜨거운 열정, 철저한 헌신성, 불타는 투혼에 묻혀진
부끄러움을 부끄러움을 아는 나이
말 한 마디 글 한 편 결정 하나에
묻고 확인하고 다시 돌아보고 또 검증하며
젖먹이 아가를 품은 듯 운동한다는 것이
두렵고 두려운 것임을 아는 나이
한 시절 모든 것이 선명했던 투쟁 속에서
깨질 것은 깨어지고 무너질 것은 무너져내려 이제는,
스스로 창조의 걸음 내딛는 때늦은 나이
서른다섯 생일날, 오 ‘이제와 우리 죽을 때’
맑아지고 밝아진 마지막 미소 한 떨기
나를 아는 모든 이에게 남겨줄 수 있도록
뎌 겸허하고 더 성실하게 투쟁하게 하소서
더는 늦지 않게 서둘지 말고
새벽 종울림으로 울어나 흐르게 하소서
무라카미 하루키
서른다섯 살이 되던 봄, 그는 자신이 이미 인생의 반환점을 돌아 버렸다는 것을 확인했다. 물론 자신의 인생이 몇 년이나 계속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만일 일흔 여덟 살까지 살 수 있다고 한다면, 그의 인생의 반환점은 서른 아홉이 될 것이고, 서른아홉 살이 되기까지는 아직 4년의 여유가 있다. 그래서 그는 서른다섯의 생일을 자신의 인생의 반환점이라고 정하는 데 망설임을 느끼지 않았다. 스무살 이후부터 줄곧 그는 '반환점'을 자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요소인 것처럼 생각해 왔다. 자신을 알려면, 우선은 자신이 서 있는 장소의 정확한 위치를 알아야 한다는 것이 그의 기본적인 사고 방식이었다.
김용택 - 섬진강 16. 이사
우리들은 저녁밥을 일찍 먹고 너나없이 모여들어 이삿짐을 꾸렸다. 거울 깨진 농짝 하나, 테 맨 장독 몇개, 헌옷 보따리, 때낀 카시미롱 이불, 그 흔한 흑백 텔레비 하나 없는 이런 촌 세간 살이들이 서울에 가서 산다는 게 우습고 기맥히는 일이지만, 우리들은 말없이 이삿짐을 꾸려 회관마당 삼륜차에 실었다. 아주머니는 연신 눈물 콧물을 훌쩍이며 코를 풀어 치맛자락에 닦았다. 동네 아주머니들도 모두 서로 얼굴을 마주치거나 말을 하려 들지 않았다. 확독이나 헌 덕석, 망태, 절구통 같은 촌 물건들은 대충 이웃들에게 몇 푼씩 주며 팔거나 거저 주며 아주머니는 목이 메이는지 넋을 놓곤 했었다.
아버지의 아버지, 그의 아버지들이 대대로 힘써 살았던 땅, 논과 밭과 온갖 과일 나무들, 뒷산 몇백 년 묵은 귀목나무, 강 건너 평밭, 꽃밭등, 절골, 뱃마당에 두루바위, 벼락바위, 눈 주면 언제나 눈이 익어 거기 정답게 있던, 우리들이 자라며 나무하고 고기 잡고 놀아주었던 몸에 익은 정든 이름들이 구로동 성남 신길동 명동, 이런 낯선 서울 이름들과 엇갈리며 우리 머릿속을 쓸쓸하게 지나갔다.
마당의 화톳불이 사그라져가고 새마을 스레트집은 횅뎅그레 비워졌다. 마을회관 마당엔 동네 사람들이 모두 나와서 서로 인사들을 나누었다. 아주머니들은 울먹이며 눈물을 훔치며 가다가 애들 빵이나 사주라고 구겨진 돈 몇 푼씩을 치맛속에서 꺼내어주며 복받치는 설움들을 감추지 못했다. 남의 일 같지 않은 이런 일들이 있을 때마다 사람들은 듬성듬성 줄어들어 있었고 우리들은 얼마나 가슴 아파 했던가. 이제 떠날 만한 사람들은 거의 다 떠나고 회관 마당엔 어찌하지 못하는 나이 든 사람들과 몇몇 아이들만 남아 흐린 불빛 속에 어둡고 지친 얼굴로 서 있었다.
마을 사람들과 인사를 나누고 그는 우리들과 술을 마셨다. 논물 풀물 든 구식 와이셔츠, 장가 들 때 맞춘 구겨진 양복과 닳아진 구두, 아이들은 그래도 좋아서 운전석에 앉아 빨리 가자고 조르는데, 우리들은 말없이 술잔들을 비우며 낫에 베이고 가시에 찢기고 삽이나 괭이에 찍힌 우둘투둘한 겁먹은 손들을 어색하게 덥석덥석 잡아 쥐며 말문들이 막혀, 그저 잘 있게 잘 가게 하며 서로 어깨 너머 캄캄한 어둠을 보곤 했다. 그는 뿌리치듯 짐 실은 차 뒤칸에 올라타 우리들을 외면했다. 아주머니들은 훌쩍이며 치맛자락을 걷어올려 눈물을 닦고 아이들은 어머니들 치맛자락을 잡고 서 있었다. 저녁 내내 세간살이들과 한데서 시달릴 그를 생각하니 목이 메어왔다. 차가 회관 마당을 서서히 빠져나가자 물소리가 크게 쏴쏴 저 앞 강굽이를 돌아갔다. 헤드라이트 불빛이 잠깐 노딧거리를 비췄다. 강물소리가 쏴 하며 우리들 가슴을 크게 쓸었다.
피와 땀과 살을 섞었던 땅, 버림받고 무시당하면서도 나라에서 시키는 대로 다 했던 땅, 그래도 정 붙여 살았던 땅, 나이 서른 다섯에 이사라니. 동구 정자나무를 빠져나간 차는 새마을 신작로를 잘도 달리며 불빛을 여기저기 쏘아댔다. 차 꽁무니의 빨간 불빛이 동구길을 아주 사라진 후에도 사람들은 회관 마당에 덩그렇게 남아 서로 얼굴들을 외면한 채 앉거나 서서 담뱃불을 빤닥이며 캄캄한 앞산을 바라보거나 땅을 내려다보며 그와 살 비벼 살아온 날들을 생각하며 헤성헤성한 마음들을 어찌하지 못하고 하나둘 헛기침을 하며 어둑어둑 헤어졌다. 회관 불빛이 우리들 등뒤에서 각자 꺼지고 시커먼 어둠이 동네를 가득 메웠다. 그의 텅 빈 집앞을 애써 외면하고 지나며 이제 아무도 이사 들지 않을 꺼멓게 그을린 불빛 없는 그 이웃을 생각하며 우리들은 또 소쩍새 울음소리나 부엉새 울음소리에, 강물소리에 돌아눕고 돌아누우며 며칠 밤 잠을 설칠 것이다. 누가 또 떠나겠지. 누군가 또 떠나겠지.
섬진강 물소리가 한 번 큰 숨소리로 뚝 그쳤다가 힘겹게 이어졌다